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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 거지같은 가게는.
코너는 작은 식당의 허름한 외관을 둘러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안에 들어가자 창문이 꼭꼭 닫겨있어서 그런지 낮인데도 어두웠고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아무도 없는 식당 안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빈 술병들이 바닥을 굴러다녔고 그에게 가까이 갈수록 역겨운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는 겁에 질린 눈으로 그들이 들어오는 걸 지켜봤다.
우리가 누군지 말 안해도 알겠지?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딱 하루만 더 봐주시면 안될까요...? 코너는 그를 비웃었다. 그렇게 돈이 없으신데 술은 어떻게 맨날 쳐마실까 모르겠네. 좋은 말 할때 빨리 돈 내놔. 남자는 코너 앞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며 말했다. 지금은 돈이 없어요.. 정말 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없어요..정말 죄송합니다.. 내일까지 어떻게든 마련해볼께요. 코너는 무릎꿇고 있는 그에게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 아빠였으니까 이만큼이나 봐준거야. 나같으면 어림도 없었어. 그리고는 그의 얼굴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 남자가 뒤로 넘어지며 테이블과 의자들이 함께 우당탕 쓰러졌다. 얼굴에 선명한 구둣자국이 찍힌채로 코피를 흘리며 몸을 일으킨 남자는 다시 코너 앞에 엎드리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지겹다는 표정으로 코너가 뒤에 있던 남자들에게 눈짓하자 그들은 남자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퍼졌고 남자의 손이 닿았던 부분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본 코너는 손으로 가볍게 털어낸 다음 의자에 앉아 그가 맞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봤다.
그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 그쪽을 쳐다보니 이층으로 연결된 계단 위쪽에서 꾀죄죄한 옷차림의 남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남자의 아들로 보이는 그의 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코너와 눈이 마주친 그는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분명히 지 아빠한테 맞은거겠지. 속으로 생각하던 코너는 잠시 혀를 차고는 그만-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이 정말 마지막이야. 만약 내일까지도 준비못하면 아들이랑 손잡고 황천길 갈 줄 알아. 잔뜩 부어터진 얼굴로 남자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너는 가게를 나서려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계단에 서 있던 남자가 어느새 아래로 내려와 쓰러진 남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코너는 코웃음을 치고는 차에 올라탔다.
다음날 코너는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가게 안은 여전히 어두웠고 조용했으며 카운터에는 어제 계단에서 봤던 남자 혼자 앉아있었다. 그는 코너네 일당이 들이닥치자 어서오세요- 웃으며 말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그에게 약간 어리둥절함을 느끼며 코너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여기 사장은 어딨어. 우리 아빠 멀리 갔어요. 열밤 자고 온댔어요. '뭐야. 모지리였어?' 코너는 생글거리는 남자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다시 말했다. 이름이 뭐야. 다니엘이요. 그래, 다니엘... 나는 니 아빠한테 받아야 할 돈이 있어. 그러니까 어디로 갔는지 빨리 말해. 돈..? 갸우뚱거리던 다니엘은 아! 하더니 카운터 밑으로 허리를 숙여 끙차-하고 주머니를 하나 들어올렸다. 아빠가 돈 달라는 사람들 오면 이거 주랬어요. 다니엘이 내민 주머니를 열자 그 안에 돈이 들어있었다. 맞는지 확인해 봐. 남자들이 돈을 세보는동안 코너는 테이블에 손가락을 달그락거렸고 다니엘은 그런 코너를 계속 방글거리며 쳐다봤다. 코너가 얼굴을 찌푸리며 뭘 봐. 라고 묻자 잘 생기셔서요. 헤헤. 다니엘이 순박하게 웃었다. 제가 본 사람중에 제일 잘생기신 것 같아요. 코너는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기분이 좋아져서 말없이 흠흠. 거렸다. 그때 남자들이 액수가 맞다고 코너에게 말하자 코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배 안고프세요? 나 요리 잘해요. 다니엘이 말하자 마침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뒤에 서있던 남자 한명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구질구질한 곳에서 한번도 뭘 먹어본 적 없는 그로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마침 약간 시장했고 또 왠지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살짝 들어서 마지못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서 제일 비싼 게 뭐야.
스테이크요. 근데 할 줄 몰라요.
........그럼 뭘 할 줄 아는데.
으깬 감자랑 소시지요.
눈을 빛내며 자신있게 말하는 다니엘을 노려보며 그냥 나갈까 고민하던 코너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럼 그걸로. 라고 말했고 다니엘은 잠시만 기다리세요~ 쫄랑쫄랑 주방으로 들어갔다.
으깬 감자랑 소시지 나왔습니다~ 앞에 접시를 내려놓던 다니엘은 코너를 보며 물었다. 근데 왜 혼자 앉아요? 저 사람들이랑 사이 나빠요? 코너는 허벅지에 냅킨을 깔며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밥 먹을 때 누가 옆에 있는 거 싫어해. 그리고 어떻게 쟤네들이랑 같이 밥을 먹어? 왜 같이 못 먹어요? 그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거야 난 특별하니까. 특별한 사람은 특별한 사람들끼리 어울려야 하는거야. 그렇구나~ 그럼 맛있게 드세요~ 고개를 끄덕이던 다니엘은 이번에는 남자들이 있는 테이블로 쫄랑쫄랑 갔다. 혼자 묵묵히 소시지를 썰어 입에 넣던 코너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에 왠지모르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야. 이리와봐. 남자들과 재잘거리던 다니엘이 이쪽을 쳐다보며 저요? 라고 묻자 .....그럼 이 빌어먹을 식당에 점원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빨리 와! 코너가 화난 듯이 말하자 다니엘이 쭈삣거리며 다가왔다. ..왜요? 코너는 아무렇지 않게 으깬 감자를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거기 앉아.
여기요?
그래.
하지만 밥 먹을 때 옆에 누가 있는 거 싫어한다면서요.
싫어해.
근데 왜요?
쾅! 코너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자 접시가 튀어올랐고 쨍그랑거리며 나이프가 땅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험상궂은 분위기가 되자 다니엘이 더듬거리며 죄..죄송해요..라고 말했고 빨갛게 흥분된 얼굴로 코너는 화를 삭이며 목에 넥타이를 살짝 풀렀다. 앞으로는 두 번 말하게 하지마. 내가 하라면 무조건 해야 되는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어?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코너는 그제야 좀 가라앉은 얼굴로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형편없진 않네. 하긴 으깬감자랑 소시지 주제에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차분하게 독설을 퍼붓는 코너를 바라보던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눈이 참 파랗네요. 보석같다. 음식을 우물거리던 코너가 다니엘을 흘긋 보고는 말했다.
...그거 니 아빠가 그런거지? 멀뚱멀뚱 쳐다보는 다니엘에게 코너가 눈을 가리켰다.
니 눈 말이야.
...이거요? ........네..하지만 괜찮아요. 하나도 안아파요.
퍽이나 괜찮겠다. 코너는 아직도 시퍼런 멍자국을 보며 속으로 비웃으며 말했다.니 아빠는 개쓰레기야. 우물쭈물하던 다니엘은 ....아빠 욕 하지 마세요... 울먹거렸다. 코너는 포크를 내려놓고 다니엘을 빤히 쳐다봤다.
너 말이야. 어제 우리가 니 아빠 때린 거 봤지.
....네..
근데 왜 아무렇지 않게 우리한테 음식 해주고 잘생겼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거야?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목소리는 낮았다. 그건..다니엘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어제 일이니까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잖아요. 코너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배를 잡고 웃는 그를 다니엘이 멍하니 쳐다봤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코너가 말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 큭큭큭 정말 웃기네. 너 그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지껄이는거야? 다니엘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랬었어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구요. 그러니까 어제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었어도 오늘은 모두 잊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구요. 아저씨들이 어제 우리 아빠를 때렸지만 그건 어제 일이잖아요. 오늘은 아무 일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아무렇지 않아요. 오늘은 어제랑은 다른 날이에요. 코너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코너는 소파에 드러누워 담배를 피웠다. 그는 방금 전 사람들 앞에서 아빠에게 당한 굴욕에 치밀어 오른 울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하루이틀 봐온 것도 아니면서 매번 코너는 아빠가 자기를 실망스러워하고 질책할 때마다 화가 났고 서글펐다. 어떻게 나한테 너같은 아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차가운 얼굴로 언젠가 그런 말을 하던 아빠를 떠올리던 코너는 쓰게 웃었다. 잘해보려고 해도 잘 안되는 걸 대체 어쩌란 말이야.
정말 엿같네.
담배를 뻑뻑 태우던 코너는 그 모지리가 생각났다. 정말 잘생겼어요. 지도 나랑 별반 다를 거 없이 생겼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지껄였지. 코너는 어제 그가 했던 말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라... 코너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으깬 감자와 소시지를 해오라고 시켰다. 코너는 앞에 정갈하게 놓여진 접시를 묵묵히 바라봤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은 꽤 맛있어 보였고 주변은 반짝반짝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리고 죽은 듯이 조용했다. 늘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던 그는 벌떡 일어나 차를 몰고 식당으로 향했다.
쾅쾅쾅-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코너는 아랑곳없이 잠겨있는 가게 문을 두드렸다. 잠시후 자다 나온 것 같은 부스스한 얼굴로 다니엘이 문을 열었다. 약간 놀란 표정으로 눈을 꿈벅거리는 다니엘을 제치며 안으로 들어온 코너는 테이블에 떡하니 앉아 멀뚱히 서있는 다니엘에게 뭐해 주문안받고. 태연하게 말했다. 가게문 닫았는데요. ......그래서 지금 주문을 안받겠다는거야? 음산한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거리더니 다니엘은 종종거리며 걸어왔다. 뭐 드실건데요. 어차피 니가 할 줄 아는게 한가지 밖에 더 있어? 내가 어제 먹던걸로 해와. 막무가내로 들이닥친것도 모자라 그것도 자신을 놀리면서 음식을 내놓으라고 하는 코너가 조금 마음에 안들었지만 다니엘은 내색하지는 못하고 주방으로 가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코너가 음식을 먹을 동안 그가 원하는대로 같은 테이블에서 멀뚱히 앉아있던 다니엘이 뜬금없이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라고 물었다. 켁켁거리며 기침을 하던 코너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아니. 왜..? 라고 말했다. 그냥... 조금 슬퍼보여서요. 라고 다니엘이 말하자 조금 당황한 얼굴로 코너는 아무말 없이 큼직한 소시지를 입에 넣고 와구와구 씹었다.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요. 물을 한모금 마신 코너는 접시에 시선을 둔채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니가 했던 말 말이야, 그거 다시 한번 말해봐. ...어제 했던 말이요? 다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있잖아.. 니가 나보고.... 이런 젠장!!! 지입으로 말해놓고도 기억 못한다는거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코너를 당황스럽게 쳐다보던 다니엘은 열심히 눈을 도로록 굴렸다. 음.....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아니.그거 말고. ...음....으음.........핫! 알았다! 아저씨 눈 파랗다고 한거!!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그거랑 좀 비슷한건데..라던 코너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나 아저씨 아니야.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주제에. 너 몇살이야? 다니엘은 약간 풀죽은 얼굴로 xx살이요.. 대답했고 '나보다 어리긴 어리네 액면가는 나보다 더 많아보이는 주제에' 속으로 생각하던 코너는 큼큼거리며 이제부터는 형이라고 불러. 특별히 너만 그렇게 부르게 해주는거야. 이건 정말 엄청나게 스페셜한 대우라구. 내말 알아듣겠어? 라고 했고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야 이 거지같은 가게는.
코너는 작은 식당의 허름한 외관을 둘러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안에 들어가자 창문이 꼭꼭 닫겨있어서 그런지 낮인데도 어두웠고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아무도 없는 식당 안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빈 술병들이 바닥을 굴러다녔고 그에게 가까이 갈수록 역겨운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는 겁에 질린 눈으로 그들이 들어오는 걸 지켜봤다.
우리가 누군지 말 안해도 알겠지?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딱 하루만 더 봐주시면 안될까요...? 코너는 그를 비웃었다. 그렇게 돈이 없으신데 술은 어떻게 맨날 쳐마실까 모르겠네. 좋은 말 할때 빨리 돈 내놔. 남자는 코너 앞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며 말했다. 지금은 돈이 없어요.. 정말 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없어요..정말 죄송합니다.. 내일까지 어떻게든 마련해볼께요. 코너는 무릎꿇고 있는 그에게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 아빠였으니까 이만큼이나 봐준거야. 나같으면 어림도 없었어. 그리고는 그의 얼굴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 남자가 뒤로 넘어지며 테이블과 의자들이 함께 우당탕 쓰러졌다. 얼굴에 선명한 구둣자국이 찍힌채로 코피를 흘리며 몸을 일으킨 남자는 다시 코너 앞에 엎드리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지겹다는 표정으로 코너가 뒤에 있던 남자들에게 눈짓하자 그들은 남자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퍼졌고 남자의 손이 닿았던 부분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본 코너는 손으로 가볍게 털어낸 다음 의자에 앉아 그가 맞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봤다.
그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 그쪽을 쳐다보니 이층으로 연결된 계단 위쪽에서 꾀죄죄한 옷차림의 남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남자의 아들로 보이는 그의 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코너와 눈이 마주친 그는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분명히 지 아빠한테 맞은거겠지. 속으로 생각하던 코너는 잠시 혀를 차고는 그만-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이 정말 마지막이야. 만약 내일까지도 준비못하면 아들이랑 손잡고 황천길 갈 줄 알아. 잔뜩 부어터진 얼굴로 남자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너는 가게를 나서려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계단에 서 있던 남자가 어느새 아래로 내려와 쓰러진 남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코너는 코웃음을 치고는 차에 올라탔다.
다음날 코너는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가게 안은 여전히 어두웠고 조용했으며 카운터에는 어제 계단에서 봤던 남자 혼자 앉아있었다. 그는 코너네 일당이 들이닥치자 어서오세요- 웃으며 말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그에게 약간 어리둥절함을 느끼며 코너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여기 사장은 어딨어. 우리 아빠 멀리 갔어요. 열밤 자고 온댔어요. '뭐야. 모지리였어?' 코너는 생글거리는 남자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다시 말했다. 이름이 뭐야. 다니엘이요. 그래, 다니엘... 나는 니 아빠한테 받아야 할 돈이 있어. 그러니까 어디로 갔는지 빨리 말해. 돈..? 갸우뚱거리던 다니엘은 아! 하더니 카운터 밑으로 허리를 숙여 끙차-하고 주머니를 하나 들어올렸다. 아빠가 돈 달라는 사람들 오면 이거 주랬어요. 다니엘이 내민 주머니를 열자 그 안에 돈이 들어있었다. 맞는지 확인해 봐. 남자들이 돈을 세보는동안 코너는 테이블에 손가락을 달그락거렸고 다니엘은 그런 코너를 계속 방글거리며 쳐다봤다. 코너가 얼굴을 찌푸리며 뭘 봐. 라고 묻자 잘 생기셔서요. 헤헤. 다니엘이 순박하게 웃었다. 제가 본 사람중에 제일 잘생기신 것 같아요. 코너는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기분이 좋아져서 말없이 흠흠. 거렸다. 그때 남자들이 액수가 맞다고 코너에게 말하자 코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배 안고프세요? 나 요리 잘해요. 다니엘이 말하자 마침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뒤에 서있던 남자 한명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구질구질한 곳에서 한번도 뭘 먹어본 적 없는 그로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마침 약간 시장했고 또 왠지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살짝 들어서 마지못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서 제일 비싼 게 뭐야.
스테이크요. 근데 할 줄 몰라요.
........그럼 뭘 할 줄 아는데.
으깬 감자랑 소시지요.
눈을 빛내며 자신있게 말하는 다니엘을 노려보며 그냥 나갈까 고민하던 코너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럼 그걸로. 라고 말했고 다니엘은 잠시만 기다리세요~ 쫄랑쫄랑 주방으로 들어갔다.
으깬 감자랑 소시지 나왔습니다~ 앞에 접시를 내려놓던 다니엘은 코너를 보며 물었다. 근데 왜 혼자 앉아요? 저 사람들이랑 사이 나빠요? 코너는 허벅지에 냅킨을 깔며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밥 먹을 때 누가 옆에 있는 거 싫어해. 그리고 어떻게 쟤네들이랑 같이 밥을 먹어? 왜 같이 못 먹어요? 그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거야 난 특별하니까. 특별한 사람은 특별한 사람들끼리 어울려야 하는거야. 그렇구나~ 그럼 맛있게 드세요~ 고개를 끄덕이던 다니엘은 이번에는 남자들이 있는 테이블로 쫄랑쫄랑 갔다. 혼자 묵묵히 소시지를 썰어 입에 넣던 코너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에 왠지모르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야. 이리와봐. 남자들과 재잘거리던 다니엘이 이쪽을 쳐다보며 저요? 라고 묻자 .....그럼 이 빌어먹을 식당에 점원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빨리 와! 코너가 화난 듯이 말하자 다니엘이 쭈삣거리며 다가왔다. ..왜요? 코너는 아무렇지 않게 으깬 감자를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거기 앉아.
여기요?
그래.
하지만 밥 먹을 때 옆에 누가 있는 거 싫어한다면서요.
싫어해.
근데 왜요?
쾅! 코너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자 접시가 튀어올랐고 쨍그랑거리며 나이프가 땅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험상궂은 분위기가 되자 다니엘이 더듬거리며 죄..죄송해요..라고 말했고 빨갛게 흥분된 얼굴로 코너는 화를 삭이며 목에 넥타이를 살짝 풀렀다. 앞으로는 두 번 말하게 하지마. 내가 하라면 무조건 해야 되는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어?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코너는 그제야 좀 가라앉은 얼굴로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형편없진 않네. 하긴 으깬감자랑 소시지 주제에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차분하게 독설을 퍼붓는 코너를 바라보던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눈이 참 파랗네요. 보석같다. 음식을 우물거리던 코너가 다니엘을 흘긋 보고는 말했다.
...그거 니 아빠가 그런거지? 멀뚱멀뚱 쳐다보는 다니엘에게 코너가 눈을 가리켰다.
니 눈 말이야.
...이거요? ........네..하지만 괜찮아요. 하나도 안아파요.
퍽이나 괜찮겠다. 코너는 아직도 시퍼런 멍자국을 보며 속으로 비웃으며 말했다.니 아빠는 개쓰레기야. 우물쭈물하던 다니엘은 ....아빠 욕 하지 마세요... 울먹거렸다. 코너는 포크를 내려놓고 다니엘을 빤히 쳐다봤다.
너 말이야. 어제 우리가 니 아빠 때린 거 봤지.
....네..
근데 왜 아무렇지 않게 우리한테 음식 해주고 잘생겼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거야?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목소리는 낮았다. 그건..다니엘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어제 일이니까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잖아요. 코너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배를 잡고 웃는 그를 다니엘이 멍하니 쳐다봤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코너가 말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 큭큭큭 정말 웃기네. 너 그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지껄이는거야? 다니엘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랬었어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구요. 그러니까 어제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었어도 오늘은 모두 잊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구요. 아저씨들이 어제 우리 아빠를 때렸지만 그건 어제 일이잖아요. 오늘은 아무 일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아무렇지 않아요. 오늘은 어제랑은 다른 날이에요. 코너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코너는 소파에 드러누워 담배를 피웠다. 그는 방금 전 사람들 앞에서 아빠에게 당한 굴욕에 치밀어 오른 울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하루이틀 봐온 것도 아니면서 매번 코너는 아빠가 자기를 실망스러워하고 질책할 때마다 화가 났고 서글펐다. 어떻게 나한테 너같은 아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차가운 얼굴로 언젠가 그런 말을 하던 아빠를 떠올리던 코너는 쓰게 웃었다. 잘해보려고 해도 잘 안되는 걸 대체 어쩌란 말이야.
정말 엿같네.
담배를 뻑뻑 태우던 코너는 그 모지리가 생각났다. 정말 잘생겼어요. 지도 나랑 별반 다를 거 없이 생겼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지껄였지. 코너는 어제 그가 했던 말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라... 코너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으깬 감자와 소시지를 해오라고 시켰다. 코너는 앞에 정갈하게 놓여진 접시를 묵묵히 바라봤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은 꽤 맛있어 보였고 주변은 반짝반짝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리고 죽은 듯이 조용했다. 늘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던 그는 벌떡 일어나 차를 몰고 식당으로 향했다.
쾅쾅쾅-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코너는 아랑곳없이 잠겨있는 가게 문을 두드렸다. 잠시후 자다 나온 것 같은 부스스한 얼굴로 다니엘이 문을 열었다. 약간 놀란 표정으로 눈을 꿈벅거리는 다니엘을 제치며 안으로 들어온 코너는 테이블에 떡하니 앉아 멀뚱히 서있는 다니엘에게 뭐해 주문안받고. 태연하게 말했다. 가게문 닫았는데요. ......그래서 지금 주문을 안받겠다는거야? 음산한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거리더니 다니엘은 종종거리며 걸어왔다. 뭐 드실건데요. 어차피 니가 할 줄 아는게 한가지 밖에 더 있어? 내가 어제 먹던걸로 해와. 막무가내로 들이닥친것도 모자라 그것도 자신을 놀리면서 음식을 내놓으라고 하는 코너가 조금 마음에 안들었지만 다니엘은 내색하지는 못하고 주방으로 가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코너가 음식을 먹을 동안 그가 원하는대로 같은 테이블에서 멀뚱히 앉아있던 다니엘이 뜬금없이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라고 물었다. 켁켁거리며 기침을 하던 코너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아니. 왜..? 라고 말했다. 그냥... 조금 슬퍼보여서요. 라고 다니엘이 말하자 조금 당황한 얼굴로 코너는 아무말 없이 큼직한 소시지를 입에 넣고 와구와구 씹었다.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요. 물을 한모금 마신 코너는 접시에 시선을 둔채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니가 했던 말 말이야, 그거 다시 한번 말해봐. ...어제 했던 말이요? 다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있잖아.. 니가 나보고.... 이런 젠장!!! 지입으로 말해놓고도 기억 못한다는거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코너를 당황스럽게 쳐다보던 다니엘은 열심히 눈을 도로록 굴렸다. 음.....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아니.그거 말고. ...음....으음.........핫! 알았다! 아저씨 눈 파랗다고 한거!!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그거랑 좀 비슷한건데..라던 코너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나 아저씨 아니야.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주제에. 너 몇살이야? 다니엘은 약간 풀죽은 얼굴로 xx살이요.. 대답했고 '나보다 어리긴 어리네 액면가는 나보다 더 많아보이는 주제에' 속으로 생각하던 코너는 큼큼거리며 이제부터는 형이라고 불러. 특별히 너만 그렇게 부르게 해주는거야. 이건 정말 엄청나게 스페셜한 대우라구. 내말 알아듣겠어? 라고 했고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지리 다니엘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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