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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하루 종일 일진이 사나웠음을 알고 있었다. 늦잠을 잤고, 버스 안에서 발을 밟혔고, 지각을 했고, 점심을 걸렀다. 복사 용지에 손을 베이고, 서류를 두 번 혼동했고, 작성하던 문서를 한 번 날리고, 그래서 정시 퇴근을 놓쳤다. 이 밖에도 한 모금밖에 마시지 못했던 커피 전문점의 비싸고 달달한 커피를 쏟았으며 친한 직장 동료의 딸 생일이 머지않았다는 이유로 예상 밖의 지출을 해야 했다. 잔업 또한 뒤따랐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버스의 막차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텅 빈 버스에 마지막으로 몸을 싣고, 비어있는 좌석에 앉아 하루 종일 긴장했던 몸을 늘어뜨렸다. 그 자신이 평소에 아주 유능한 편이 아니었기에, 다니엘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질타와 뒷담화를 감내해야 했었다. 뭐가 문제였더라. 하나씩 꼽아 올라가며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다니엘은 이내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클래식이 흐르는 조용하고 따뜻한 버스 속에서 굳이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깜박 잠이 들었고, 내려야 할 정거장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벤은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벤은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 그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손바닥보다 작게 접혀 구깃해진 종이를 펴 깨알같이 적힌 글자들을 읽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인쇄된 것이 아니라 벤에 의해서 손으로 쓰인 것이었고, 또한 실시간으로 첨삭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 썼고, 갑자기 떠오르는 문장은 앞뒤가 맞지 않아도 일단 적고 보았다. 그동안 버스는 도로를 달리고, 과속 방지턱을 넘으며 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벤은 이 시간의,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 환경의 버스 속에서 글을 쓰고 다듬기를 좋아했다. 누가 어떻게 보고 뭐라고 하든, 그에게는 그랬다.
버스는 종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착실하게 정해진 루트를 돌던 버스는 종점이 가까워지는 만큼 승객들을 야금야금 뱉어내고 있었다.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정이 지난 시간, 벤은 제가 항상 지키는 그 익숙한 시간대의 마지막 승객이 내리는 것과 동시에 이어폰을 귀에서 뽑았다. 접힌 길대로 다시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가 곧바로 그의 귀에 들어왔다. 벤은 그 때 다니엘을 보았다. 벤은 즉시 당황했고, 시선을 마구 굴리다 다시 다니엘의 뒤통수에 고정시켰다. 없어야 할 승객이 있다는 것에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다니엘의 모습이, 벤이 묘사했던 글의 인물과 놀랍도록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벤이 쓰고 있는 것은 게이 소설이었다.
그의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것은 지나간 노래도, 다른 나라의 언어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신곡도 아니었다. 그의 작고 낡은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빽빽하게 저장된 것은 하나같이 녹음된 남자의 신음들이었다. 벤은 막차에 올라 그 소리를 들으며 장면을 고심했고, 대사를 엮었으며, 인물을 움직였다. 대개 그가 쓰는 글의 주인공은 남자 두 명으로 족했다. 대사는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인물이 움직이는 동선도 복잡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벤이 집착하는 것은 침대 위, 혹은 소파 위, 혹은 카펫 이외의 여러 장소에서 행해지는 인물의 움직임이었다. 벤은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행했다.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다. 다니엘은 기사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 멍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벤은 다니엘의 얼굴을 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당장이라도 종이를 꺼내 다니엘의 얼굴을 묘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막연히 생각해 두었던 인물의 현신이 제 발로 나타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추위에 떨고 있었고,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내릴 곳을 지나친 상태였다.
꼬마야. 여기가 어디지?
종점이에요.
...이런.
외진 곳이라 택시도 잘 안 다녀요. 많이 지나쳤나요?
음... 그래. 그런 것 같구나.
벤은 스물 중반에 접어들었으나 굳이 호칭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뚝 떨어진 것과 다름없었으니 방해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다니엘은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입김을 후후 뱉어냈다.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잡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끝까지 일이 꼬이고 말았다. 짜증이 났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는 왜소한 체구의 남자에게 가까운 모텔의 위치를 물었다.
벤은 웃었고, 다니엘은 그 웃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모텔도 제법 나가야 있는데. 괜찮으시면 제 플랫으로 오세요. 혼자 살거든요.
일진이 사나운 하루였다. 다니엘은 처음 보는 남자가 뭘 믿고 자신을 재워준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불행히도 큰 의심을 품지 않았다. 곧 제 옆으로 붙어 걸음을 떼는 다니엘을 바라보며 벤은 막혀있던 뒷부분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뮬레이션만으로는 완벽하지 않던, 어떤 동영상에도 나와 있지 않던 장면을.
물론 다니엘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이 상황은 단지 일진이 나쁜 하루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다니엘은 하루 종일 일진이 사나웠음을 알고 있었다. 늦잠을 잤고, 버스 안에서 발을 밟혔고, 지각을 했고, 점심을 걸렀다. 복사 용지에 손을 베이고, 서류를 두 번 혼동했고, 작성하던 문서를 한 번 날리고, 그래서 정시 퇴근을 놓쳤다. 이 밖에도 한 모금밖에 마시지 못했던 커피 전문점의 비싸고 달달한 커피를 쏟았으며 친한 직장 동료의 딸 생일이 머지않았다는 이유로 예상 밖의 지출을 해야 했다. 잔업 또한 뒤따랐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버스의 막차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텅 빈 버스에 마지막으로 몸을 싣고, 비어있는 좌석에 앉아 하루 종일 긴장했던 몸을 늘어뜨렸다. 그 자신이 평소에 아주 유능한 편이 아니었기에, 다니엘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질타와 뒷담화를 감내해야 했었다. 뭐가 문제였더라. 하나씩 꼽아 올라가며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다니엘은 이내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클래식이 흐르는 조용하고 따뜻한 버스 속에서 굳이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깜박 잠이 들었고, 내려야 할 정거장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벤은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벤은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 그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손바닥보다 작게 접혀 구깃해진 종이를 펴 깨알같이 적힌 글자들을 읽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인쇄된 것이 아니라 벤에 의해서 손으로 쓰인 것이었고, 또한 실시간으로 첨삭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 썼고, 갑자기 떠오르는 문장은 앞뒤가 맞지 않아도 일단 적고 보았다. 그동안 버스는 도로를 달리고, 과속 방지턱을 넘으며 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벤은 이 시간의,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 환경의 버스 속에서 글을 쓰고 다듬기를 좋아했다. 누가 어떻게 보고 뭐라고 하든, 그에게는 그랬다.
버스는 종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착실하게 정해진 루트를 돌던 버스는 종점이 가까워지는 만큼 승객들을 야금야금 뱉어내고 있었다.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정이 지난 시간, 벤은 제가 항상 지키는 그 익숙한 시간대의 마지막 승객이 내리는 것과 동시에 이어폰을 귀에서 뽑았다. 접힌 길대로 다시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가 곧바로 그의 귀에 들어왔다. 벤은 그 때 다니엘을 보았다. 벤은 즉시 당황했고, 시선을 마구 굴리다 다시 다니엘의 뒤통수에 고정시켰다. 없어야 할 승객이 있다는 것에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다니엘의 모습이, 벤이 묘사했던 글의 인물과 놀랍도록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벤이 쓰고 있는 것은 게이 소설이었다.
그의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것은 지나간 노래도, 다른 나라의 언어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신곡도 아니었다. 그의 작고 낡은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빽빽하게 저장된 것은 하나같이 녹음된 남자의 신음들이었다. 벤은 막차에 올라 그 소리를 들으며 장면을 고심했고, 대사를 엮었으며, 인물을 움직였다. 대개 그가 쓰는 글의 주인공은 남자 두 명으로 족했다. 대사는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인물이 움직이는 동선도 복잡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벤이 집착하는 것은 침대 위, 혹은 소파 위, 혹은 카펫 이외의 여러 장소에서 행해지는 인물의 움직임이었다. 벤은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행했다.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다. 다니엘은 기사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 멍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벤은 다니엘의 얼굴을 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당장이라도 종이를 꺼내 다니엘의 얼굴을 묘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막연히 생각해 두었던 인물의 현신이 제 발로 나타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추위에 떨고 있었고,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내릴 곳을 지나친 상태였다.
꼬마야. 여기가 어디지?
종점이에요.
...이런.
외진 곳이라 택시도 잘 안 다녀요. 많이 지나쳤나요?
음... 그래. 그런 것 같구나.
벤은 스물 중반에 접어들었으나 굳이 호칭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뚝 떨어진 것과 다름없었으니 방해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다니엘은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입김을 후후 뱉어냈다.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잡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끝까지 일이 꼬이고 말았다. 짜증이 났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는 왜소한 체구의 남자에게 가까운 모텔의 위치를 물었다.
벤은 웃었고, 다니엘은 그 웃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모텔도 제법 나가야 있는데. 괜찮으시면 제 플랫으로 오세요. 혼자 살거든요.
일진이 사나운 하루였다. 다니엘은 처음 보는 남자가 뭘 믿고 자신을 재워준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불행히도 큰 의심을 품지 않았다. 곧 제 옆으로 붙어 걸음을 떼는 다니엘을 바라보며 벤은 막혀있던 뒷부분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뮬레이션만으로는 완벽하지 않던, 어떤 동영상에도 나와 있지 않던 장면을.
물론 다니엘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이 상황은 단지 일진이 나쁜 하루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산셍님 여기서 자르시면 안 돼요ㅠㅠㅠ어나더ㅠㅠㅠㅠㅠ
답글삭제어나더요 선생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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