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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야생 늑대수인 연구의 방향을 근본부터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야생 늑대수인은 한 달에 며칠씩 주기적으로 제 영역에서 모습을 감춘다는 점만 빼면 일반 야생 늑대와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기억을 되짚어 애완동물 노릇을 하고 있는 늑대수인 중에도 인간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개체가 종종 있어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것이 야생의 습성이 남아있는 흔적이라고 일반화를 하려면, 더 많은 야생 늑대수인을 연구해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외로운 수컷을 연구하는 일에 집중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연구 대상에게 개인적인 애착을 붙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다니엘은 녀석에게 야생 개체 A라는 건조한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A를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전문가답지 못하게 A를 휴고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논문을 다듬는 과정에서 애칭을 고쳐 기록하기로 하고, 휴고라는 명명을 자유롭게 사용하기로 했다.
다니엘은 필요에 따라 자신과 휴고와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휴고를 관찰했다. 망원경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먼 곳에서 그를 보기도 했고, 불과 몇 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관목아래 숨어서 보기도 했다. 다니엘은 휴고와 자신과의 거리를, 자신의 의지대로 능동적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니엘이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관찰하도록 내버려둘지 결정하는 것은 휴고였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결정하는 것도 휴고였다. 다니엘은 어떻게 해야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인 휴고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신경이 분산된 탓인지 좀처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다니엘은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을 지나며 홀쭉해졌다 튼튼해지기를 반복하는 휴고를 관찰하는 것 이외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휴고는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한번은 휴고의 굴속에 기어들어가 그간 쌓아온 신뢰를 깨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사람 모습의 휴고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내려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굴 안에 휴고가 없었다. 후일 다니엘이 자신의 굴 안에 무단침입 했었다는 흔적을 발견한 휴고가 다니엘을 나무라듯 모습을 감춰버렸다.
보름달이 뜨는 주간도 지났는데, 휴고가 모습을 감추자, 다니엘은 그간 휴고를 관찰하며 써먹었던 추적 스킬을 발휘해 휴고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휴고의 털끝 하나 발견하지 못한다. 그제야 다니엘은 그동안 휴고가 자신이 관찰 되도록 허락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걸 깨닫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 늑대수인을 굴종시키고 착취하는 풍토에 익숙해 있다 보니, 야생의 늑대수인에게도 당연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오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첫날 휴고와 맞닥뜨리고 느꼈던 위압감의 몇 배나 되는 절망을 느꼈다. 연구를 접고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작스럽게 휴고가 모습을 나타냈다. 다니엘은 반가운 마음에 “휴고!” 하고 자신이 붙인 애칭을 소리 내어 말했다. 휴고가 다니엘이 멋대로 붙인 애칭을 직접 듣게 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휴고는 뾰족한 귀를 쫑긋 하고 움직이면서 놀란 듯 한 표정을 짓더니, 그 이름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날듯이 뛰어가 버렸다. 다니엘은 멀어지는 휴고를 향해 “휴고! 내가 잘못했어! 휴고!!” 하고 소리 질렀지만, 휴고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음 보름달이 떠올 때까지 휴고는 다니엘이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다시 허락 했지만, 전처럼 다정한 느낌은 아니었다. 다니엘은 그 기간 동안 관찰 일지를 제대로 써나가지 못했다. 그러지 않으려 해봐도, 관찰 일지를 한줄 한줄 써내려 가다보면 휴고에게 쓰는 변명 섞인 편지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휴고에 대한 자신의 심리적 거리가 연구에 방해가 될 만큼 지나치게 가까워졌다고 판단했다. 번거롭더라도 관찰 대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휴고와 헤어진다고 생각하자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니엘은 앞일에 대한 내키지 않는 설계를 하다가 스르륵 잠들었다.
다니엘이 눈을 뜬 것은 캄캄한 새벽이었다. 누군가가 다니엘을 험하게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다니엘은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차렸다. 창문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에 건장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 새벽에 불모지대 한복판에 있는 오두막을 방문할 사람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싹한 기운이 다니엘을 엄습했다. 다니엘은 침상에서 고꾸라져서 기듯이 남자가 서있는 반대편 벽으로 물러났다. 두 손을 앞에 짚고 쪼그려 앉아있던 남자는 다니엘이 도망가자 창을 등지고 곧게 일어났다. 달빛이 은은하게 남자의 인영을 타고 흘렀다.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듯 했고, 목에서부터 어깨, 팔뚝으로 이르는 잘 발달된 근육은 남자가 지니고 있을 괴력을 시사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덜덜 떨었다. 그러다 하나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니엘은 직감적으로 저 남자가 휴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휴,...휴고?”
다니엘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휴고의 이름을 쥐어짜냈다. 남자는 비아냥거리는 불량배처럼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리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휴고가 아냐, 휴라고. 휴 잭맨.”하고 대답했다. 여태까지 내 이름도 모르고 뭐했냐는 짜증이 섞인 투였다.
다니엘은 학자적 성취감인지, 휴와 한층 가까워졌다는 설렘인지 구별 할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휴는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다니엘에게 다가가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았다.
얌전히 휴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기던 다니엘이 손을 들어 휴를 만지려고 하자, 휴는 재빠른 동작으로 물러나더니 오두막을 나갔다. 다니엘이 곧바로 뒤따라 나갔지만 이 불모지대의 주인인 휴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다니엘은 오두막으로 돌아와 불을 켜고 휴가 남기고간 흔적을 조사해서 면밀히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록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다니엘은 그간의 관찰 일지를 뒤적거리며 날이 밝도록 잠들지 못했다.
다니엘은 휴와의 의사소통이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직후에는 매우 수다스러워졌다. 산책 중에 그 이름은 어떻게 얻은 거냐고 꼬치꼬치 캐묻고, 메타모피시스 사이클 동안 지내는 장소가 어딘지 알려주면 안 되냐고 졸라대기도 했다. 그것을 견디다 못한 휴가, 지난번처럼 잠든 다니엘을 찾아가 닥치라고 윽박지른 뒤에는 꿀 먹은 것처럼 과묵해졌지만...
다니엘의 관찰 일기는 차곡차곡 오두막 구석에 쌓여갔고, 불모지대에는 봄이 찾아왔다. 번식기를 보내기 위해 순록 무리가 돌아오고, 순록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니엘의 가슴도 새로운 기대로 두근거렸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복사해서 붙여 넣은 것이나 다름없이 단조로워진 관찰 일지에 새로운 내용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휴의 번식기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 늑대는 한번 반려자로 맞은 상대방과 평생 동안 그 관계를 유지했다. 이것은 애완동물화 된 늑대수인에게도 흔히 발견되는 습성이었는데, 야생의 늑대수인은 어떤 습성을 지녔을지 뚜렷하게 보고된바가 없었다. 야생 늑대수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인과관계에 따른 추측뿐이었다.
다니엘도 그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추측과, 실증적 증거가 있는 학설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다니엘은 추측을 학설로 만드는 최초의 학자가 될 것이다.
사실 휴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을 맞았을 때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일반 사람과 인터뷰를 하듯 마주 앉아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휴가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을 맞으면 가끔씩 오밤중에 나타나 자기 할 말만 던져놓고 사라지는 통에, 다니엘은 휴와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반려자를 잃고 혼자가 된 것인지, 아직 반려자를 맞은 경험이 없는 것인지 조차 불확실했다. 그것은 올 봄 동안 관찰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이다. 물론 휴가 다니엘에게 자신의 번식 활동을 관찰하도록 허락 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다니엘은 휴의 호의를 얻기 위해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할 것이다.
날씨가 따뜻했던 어느 날 한 낮에 있던 일이었다. 다니엘은 장기간 지속된 연구 활동으로 피로가 누적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따뜻한 햇볕과 온순하게 흘러가는 맑은 강물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다니엘은 속옷 한 장 남기지 않고 옷을 벗어, 지고 있던 장비와 함께 차곡차곡 정리해두고 물가로 들어갔다. 늦봄이었지만 강물은 아직 차가웠다.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다니엘은 온몸을 적시며 가볍게 물장구를 치다가, 강변에 있는 바위에 누워 일광욕을 했다. 지독하게 창백해진 피부에 건강한 혈색이 돌게 하려면 이정도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나았다.
몸에 물기가 마르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니엘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마치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의 몸에 닿은 기분이었다. 다니엘은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혹시 멀리까지 나온 마을 주민이라도 마주친다면 보통 난처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니엘이 발견한 것은 휴였다. 교차한 앞발로 턱을 개고 납작하게 누워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다니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분 탓일지 몰라도 묘하게 휴의 시선이 다니엘의 몸을 야릇하게 훑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엘은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벗어둔 옷가지로 급하게 몸을 가렸다.
“뭐하는 짓이야 저리가!”
다니엘은 휴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휴를 향해 소리 질렀다. 휴는 일어나서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마치 볼 것도 없구만 호들갑떨긴.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니엘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휴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니엘이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는 모양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어슬렁어슬렁 자기 굴로 돌아갔다.
다니엘은 휴에게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휴가 다니엘에게 사과라도 하듯이 사냥한 고기를 나눠주었기 때문에, 다니엘의 꽁한 기분이 사르르 녹았다.
다니엘은 휴가 나눠준 고기를 먹지 않고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 휴가 뱃속에 담고 있다가 표면이 살짝 소화된 상태로 게워낸 고기라서 도저히 먹을 기분이 안 들기 때문이기도 했고, 논문에 실증 자료로 써먹기 위해 표본으로 남겨둬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강가에서의 웃지 못 할 사건 뒤로 휴가 고기를 나눠주는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다니엘은 표본으로 쓰고도 남을 만큼 고기가 넘쳐나서, 오두막에 보급품을 전해주러 찾아오는 마을 주민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마을 주민은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받아갔지만 나중에는 충분히 받았다며 거부했다.
휴가 다니엘에게 사냥의 수확물을 사과의 의미로 준다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다니엘은 휴의 행동에 다른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휴가 다른 야생 늑대수인에게 구애활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것과 자신에게 먹이를 공급해주는 것을 연결해서 생각할 만큼 창의적이지 못했다.


구애활동 귀엽네.. 그나저나 금손아 내가 마스터볼 가져왔어 어서 볼 안으로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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