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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수인은 매월 보름달이 뜨는 시기가 되면 길게는 일주일에서 짧게는 삼일정도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흔히 이를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이라 불렀음.
현재는 야생의 늑대수인은 거의 볼 수 없음. 대부분 애완동물화 되어서 사람과 섞여 산다. 늑대 수인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져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주기적인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그래서 주인이 원하면 인공적인 호르몬제를 사용하여 필요에 따라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을 조정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장기적으로 늑대수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서류상으로는 사유재산이 될 수 있는, 동물이라는 늑대수인의 법적지위를 악용하여, 강제로 사람의 모습으로 유지시킨 늑대수인이 인신매매 형태로 거래되고 있었다. 일부 급진적 진보주의자들은 늑대수인을 하나의 인종으로 격상시킬 것을 주장하며 각종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늑대수인은 짐승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자연학자 다니엘 크레이그 교수는 늑대수인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수년간 연구를 해온 늑대수인 연구 분야의 석학이었음. 다니엘의 연구는 최근 들어 벽에 부딪쳤는데, 그 이유는 그가 연구 대상으로 삼는 대부분의 늑대수인들이 이미 사람에게 길들여져 있어 야생의 습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의 맞은편에 앉아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 늑대수인만 봐도 그러했다.ㅇㅇ
이 늑대수인은 불법 매매조직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와서 길에서 떠돌고 있는 것을 다니엘이 거둔 것이었음.
그런데 본인은 키울 형편이 안 되어 조교인 다아시에게 보냈고, 다아시는 자신이 맡아 기르게 된 늑대수인에게 벤 휘쇼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지어주며 소중히 보살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벤은 가끔씩 이렇게 다니엘에게 놀러오곤 했다.
오늘은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이 맞아 떨어졌는지, 오랜만에 사람의 모습으로 놀러와 있었다.
다아시가 예쁜 옷을 사줬다면서 다니엘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음. 벤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다니엘을 부모나 삼촌처럼 따랐다. 이것은 야생 늑대수인의 습성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었음. 혈족과 무리를 아끼는 늑대수인의 습성 상 한 번 자신의 무리에 들어왔다 판단한 상대에게는 깊은 애정과 신뢰를 보냈지.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는 늑대수인도 많았음. 다니엘은 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어려운 이야기의 운을 뗐음. 앞으로 길면 삼년 정도 자신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지. 다니엘은 벤이 이별과 비슷한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되었음. 그러나 다아시의 보살핌이 극진했기 때문인지 심적으로 안정된 상태인 벤은 생각보다 쉽게 다니엘의 말을 수긍했다.
다니엘은 자신의 학문적 난관 극복을 위해 야생 늑대수인의 연구에 돌입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지구상에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야생 늑대수인이 있다는 아북극 지역으로 떠나야만 했지. 벤은 쓸쓸한 표정으로 다니엘을 쳐다봤음. 다니엘은 미안하다고 다아시와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그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다니엘은 아북극 현지 연구에 대해, 대학에서 겨우겨우 승인만 받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넉넉한 재정지원은 바랄 수 없었음.
현지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만을 가지고, 다니엘은 험난한 여정 길에 올랐다.
평생 서적과 길들여진 늑대수인만을 연구했던 다니엘에게 현지의 거친 환경은 충격적이었음. 말 그대로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와 다니엘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현지 주민들이 무엇보다 다니엘을 힘들게 했음. 다니엘은 야생 늑대수인을 접하기 위해 북극 늑대수인 서식지인 툰드라 지대까지 들어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 주민들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었지.
어차피 흐린 날씨 때문에 발이 묶여있어야 했던 다니엘은 마을 주점이나 회관 등을 들락거리며 주민들에게 호의를 사기 위해 노력했다. 그로 인해 주민들과 제법 가까워졌고, 늑대수인이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주워들을 수 있었음.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인 늑대수인이 마을 처녀를 임신 시켰다는 이야기. 또는 상점에 와서 고기를 사갔다는 이야기. 또는 수년간 잘 알고 지내던 이웃이 알고 보니 늑대수인이더라는 이야기까지...
다니엘이 제일 알고 싶은 것은 야생 상태인 늑대수인이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을 어떻게 보낼까였어. 산 속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겨울을 나는 나무꾼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기 때문에 주민들의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 임신 이야기야, 이종교배가 불가능하니 어불성설이겠지만.
다니엘은 마을에 묶여 지내는 동안 추위를 이기는 마을 사람들의 노하우도 전수받고, 툰드라 지대 한 복판에 세울 연구 캠프에 보급품을 전달하는 경로까지 확보했어. 이제는 정말로 늑대수인 소굴로 들어가는 일만 남아 있었음.
다니엘은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험난한 툰드라 지대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갔다.
다니엘은 사냥꾼이 쓰는 오두막과 높은 지대에 쳐둔 텐트를 오가며 매일같이 늑대수인의 흔적을 찾아 헤맸어. 동물 표본으로 가득 찬 연구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분석 할 때와는 다른 흥분이 느껴졌지. 그 흥분이 지루함과 고됨으로 변해갈 때 쯤....
다니엘은 숲에서 거대한 수컷 늑대수인 한 마리와 마주쳤어. 바닥에 떨어뜨린 망원경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다 펴니, 눈앞의 둔덕에 송아지만한 들짐승 한 마리가 위압적인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거야. 유순하게 길들여진 늑대수인이나 책장위에 그림으로 인쇄된 늑대수인의 모습을 수없이 봐왔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과는 차원이 달랐지. 다니엘은 꼼짝없이 압도되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어. 만약을 대비해 라이플총을 등에 매고오기도 했지만, 선 자세 그대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 놈은 빛나는 갈색 눈동자로 다니엘을 평가하듯 훑어봤어.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놈이 먼저 날듯이 뛰어서 자리를 벗어났다. 다니엘은 뒤도 안 돌아보고 오두막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어. 그날 밤은 공포 때문에 잠들지 못했지. 날이 밝고, 학구열로 공포심을 이긴 다니엘은 전날의 현장으로 갔다. 다행이 밤새 날씨가 맑았기 때문에 어제 마주친 녀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어. 다니엘은 녀석의 흔적을 밟으면서 드디어 야생 늑대수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음.
다니엘이 늑대수인의 구역 알아내는 과정zip
다니엘은 녀석이 주로 다니는 길 주변으로 텐트를 옮겼어. 그리고 녀석의 굴이 잘 보이는 둔덕으로 올라가서 위장막을 쳐놓고 망원경으로 녀석의 굴을 관찰했지. 늑대수인은 다른 여느 짐승들이 그렇듯, 규칙적인 생활을 했어.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은 녀석의 생활 리듬을 쉽게 알아낼 수 있었지.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이 제 굴로 돌아오지 않는 거야. 다니엘은 녀석이 사냥 나갔다가 부상이라도 입은 걸까 걱정하기 시작했어. 시간이 계속 흐르고 해가 넘어갈 지경이 되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던 다니엘은 일어나 위장막을 걷고 철수 준비를 했어.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여태껏 기다리던 그 늑대수인이 등 뒤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다니엘은 깜짝 놀라서 뒤로 자빠졌어. 한쪽에 잘 쌓아둔 장비들이 우르르 무너졌음. 녀석을 관찰한다고 생각했던 다니엘이 실은 녀석에게 관찰당하고 있던 거였지. 다니엘은 연륜 있는 학자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말이 통하는지 알 수도 없는 상대에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인기척은 해야 할 거 아냐!” 하고 화냈음.
그날 이후로 녀석은 다니엘이 위협이 못 된다고 느꼈는지, 다니엘을 무시하기 시작했지.
다니엘은 녀석이 자신을 너무 귀찮아해서 구역을 옮겨갈 만큼은 아니되, 계속해서 무시하지는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녀석의 시선 안에서 얼쩡거렸어. 녀석을 뺀 다른 늑대수인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녀석은 무리를 이루지 않고 혼자 사는 매우 특이한 개체였음. 그것은 다니엘의 열의에 기름을 붓는 촉매제가 되었고, 다니엘은 계속해서 녀석을 주변을 맴돌면서 관찰했다. 그 결과 녀석은 산책을 다니다가 다니엘이 뒤처지는 것 같으면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잠시 기다려주기도 하고, 다니엘이 흘리고 간 장비가 있으면 주워 다 주기도 하고, 가끔 사냥한 고기를 나눠주기도 했음. 다니엘은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고기를 나눠준 행위는 녀석에게 있어서 엄청난 친교 행위였던 거임.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이 찾아왔지. 다니엘은 녀석이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면 묻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밤잠도 설칠 지경이었어. 메타모피시스 사이클은 늑대수인 개체별로 천차만별이었지만, 보름달이 뜨는 주간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음. 다니엘은 자신이 예측한 메타모피시스 사이클 동안 평소보다 녀석에게 찰싹 붙어서 지냈어.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아침부터 녀석이 보이지 않는 거야.
다니엘은 녀석의 구역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어. 어디선가 나무꾼 아저씨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이랑 마주치지는 않을까 잔뜩 기대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다니엘 자신과 초식동물들 이외에 다른 생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음. 다니엘은 녀석이 마을에 내려가서 주민들과 어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간단한 짐을 챙겨서 마을로 내려갔어. 하지만 마을에서도 녀석을 찾지 못했지. 사냥꾼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다니엘은 녀석이 이 구역을 완전히 떠나버린 건 아닐까 불안한 생각에 잠겨 일주일을 보냈음.
녀석은 사라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돌아왔음. 한층 수척해진 모습이었음. 녀석은 메타모피시스 사이클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굴에서 숨어 지낸 것이었음. 알고 보니 거의 모든 야생 늑대수인은 인간의 모습을 감춰야할 약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말라비틀어진 녀석의 모습을 보고는 단박에 어두운 굴속에서 웅크리고 지내고 있을 사람 형태인 녀석의 모습을 유추해냈다. 이것은 다니엘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 이었다. 지금까지 알고 그가 있던 늑대수인들은 인간의 모습을 더 편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사회에 적응한 늑대수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일 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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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손이다..야생의 금손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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