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친 상태
1.
다니엘은 잠들어 있는 아들의 이마를 매만지다 손목 시계로 눈길을 옮겼다. 빠르게 쫓아 온 시간은 그가 나가야할 때가 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술을 떨어트렸다. 현관문이 잠긴 것을 꼼꼼하게 확인한 그가 몇 달 전 중고로 구매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여든 넘은 노인 같은 소리를 낸 자동차가 작게 떨리며 준비가 됐음을 알렸다. 라디오에서는 아주 예전에 들었던 것만 같은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다니엘은 핸들을 잡고있던 양손을 들어 두어번 말았다 폈다. 집 앞을 떠난 그의 차가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2.
맨체스터에 도착한 다니엘은 정갈한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는 8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는 손목 시계의 바늘을 보며 오늘은 한 건을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한 네이비색의 문이 열리자 고개를 든 다니엘은 모든 행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집 안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단단한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는 오래 된 고무 인형마냥 흐물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3.
자네가 이 일을 한 다는 걸 듣기는 했지. 몸을 판 돈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나? 정말 더럽기 그지 없군.
이렇게 해주는 게 좋아? 교수를 할 적에는 그렇게나 체면을 차리더니 지금 자네 꼴을 봐.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알겠어. 나 같아도 이런 몸이라면 여기저기 굴리고 싶겠군.
넣어달라고 해봐. 혹시 아나? 내가 돈을 더 얹어줄지?
그래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남자가 여기를 썼나?
4.
책상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뒤로 밀리고 있었다. 다니엘의 시선이 닿아있는 책상 모서리는 곧 책장에 부딪힐 것처럼 아슬한 공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배 밑에 깔린 책이 바스락거리며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가까이서 들려오는 휴의 숨소리였다. 다니엘의 허리를 강하게 부여잡은 그가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으며 강하게 그를 밀어붙였다. 다니엘은 아웃팅을 당해 교수직에서 물러나기 전 아쉬운 얼굴로 저에게 인사하던 휴가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갖은 단어들로 모욕을 주던 터라 목 마른 사람마냥 저를 찾는 휴가 낯설기도 했다. 발치에 걸려있는 허리띠가 계속해서 다니엘의 발목을 때리고 있었다. 그는 책상 끝을 좀 더 꽉 잡으며 밀리지 않기 위해 힘을 줄 뿐이었다.
5.
설마 여기서 씻고 갈 생각은 아니지?
6.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다니엘에게 건넸다. 그는 뒷주머니에 지폐를 대충 쑤셔넣었다. 엉덩이에 닿아오는 속옷이 찝찝해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혼자 모텔이라도 갈까, 다음 손님에게 가기 전에 샤워를 하기는 해야했다. 뒤돌려는 다니엘의 뒷통수를 보던 휴가 빠르게 발을 옮겼다. 그는 넋이 빠진 듯한 다니엘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꺼낸 그가 다니엘의 뒷주머니로 손을 옮겼다. 다니엘은 숨을 들이마신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휴의 코가 다니엘의 볼에 닿을 것만 같았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냄새가 났다.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선 휴가 서재로 들어갔고 다니엘은 그제야 숨을 뱉으며 그의 집을 나섰다.
7.
가까운 모텔에 도착한 다니엘은 트렁크에 있는 가방을 꺼내 들었다. 심드렁한 모텔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고는 키를 받아들고 계단을 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땀으로 젖은 티셔츠와 찝찝한 청바지를 빠르게 벗었다. 욕실로 들어가 속옷을 벗어 휴지통에 처넣었다. 물탱크가 익었는지 샤워기에서는 계속해서 미지근한 물이 나왔다. 그는 저를 얼릴 듯한 차가운 물을 맞고 싶었다.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물의 온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신경질이 났다. 싸구려 샤워 코롱에서는 와이프에게서 많이 나던 냄새가 났다. 다니엘은 거품이 묻은 샤워 타올을 집어던지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제 머리를 감싼 그의 팔에는 성하지 않은 거품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리지도 않았건만 그의 얼굴에는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8.
모텔 침대에 멍하게 누워있던 다니엘은 작게 울며 제 위치를 알리는 핸드폰 소리를 들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든 그는 화면 위로 떠오른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니엘은 저를 지명한 손님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런던에서 제일 가는 호텔의 이름만 봐도 그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는 항상 그곳을 선택했고 다니엘은 그를 만나기 위해 늘 그곳으로 갔다. 아직 두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한 시간 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침대에 누워 기이한 무늬가 그려진 시트를 덮으며 눈꺼풀을 닫았다.
9.
덜덜 거리는 차가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니엘은 알람을 맞추지 않은 자신을 탓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탄 그가 꽤 높은 층을 누르자 함께 오른 사람들이 흘낏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머리를 긁적이다 뒷주머니로 손을 옮긴 그는 휴에게서 받은 돈을 차에 두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깃하게 접혀있던 돈을 꺼내 정리한 뒤 앞주머니에 곱게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모두 그를 쳐다봤다. 티셔츠가 문제인가, 그는 다시 뒷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띵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은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텅 빈 엘리베이터가 웅웅거리며 내려갔다.
10.
미스터 페이스.
죄송해요, 조금 불편해서요.
시간 강사로는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하는 일보다는 시간 강사가 더 효율적일 겁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아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곳이 편하구요.
11.
리라고 부르라고 했잖아요.
제가 했던 이야기는 생각해보셨나요?
지금 하는 일보다는 충분히 효율적일 겁니다.
한 번 더 생각해봐요.
12.
환한 샹들리에가 다니엘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그는 쇼파 팔걸이에 부딪히는 정수리가 아파 손을 옮기고 싶었다. 제 손을 꽉 잡으며 깍지를 껴오는 리 탓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다니엘과 이마를 맞댄 채로 허리를 움직이던 리는 그의 손을 놔주며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 쇼파 등받이를 부여잡았다. 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다니엘을 보던 리가 다시 몸을 숙였다. 실려오는 무게에 배가 눌러져 잠시 숨이 막혔다. 다니엘의 손을 치우며 제 손으로 정수리를 감싸준 리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그의 안을 드나들었다. 다니엘은 눈을 감으며 아래에 집중했다. 꽃다발 같은 속눈썹이 아름다워 리는 그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호텔방에서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쇼파에서 살을 부비기 전 카펫에 쏟은 샴페인 때문일게 분명했다. 다니엘은 리의 살에서도 달달한 내가 나는 것 같아 그의 팔에 코를 파묻었다.
13.
가지마요, 아침까지 같이 있어요.
14.
다니엘은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늦게 도착한 탓도 있었지만 리가 시간을 연장한 탓도 있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글로브 박스에 우겨넣었다. 시동을 건 그가 엑셀을 밟으며 초조하게 핸들을 움직였다. 마트가 문을 닫았을까. 아들이 먹고 싶다던 미트볼 스파게티가 생각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룸미러를 살피던 그는 아들의 방에 스탠드를 켜놓지 않고 나온 것이 떠올랐다.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가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다니엘은 결국 핸들을 돌렸다. 아침 일찍 눈을 떠 마트를 갈 생각에 또 한 번 한숨이 나왔다.
15.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간 그가 스탠드를 키며 아들의 옆에 앉았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있는 아이가 사랑스러워 절로 미소가 나왔다. 아려오는 허리나 악몽 같았던 지난 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눈 앞에 있는 작은 생명을 옆에 두고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아들의 볼을 만지려던 다니엘은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발로 찼다.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덮어주던 다니엘은 가느다란 팔에 있는 주사 자국을 보고 말았다. 그는 가슴께가 저릿해오는 것을 느꼈다. 병원에 가는 날이 언제더라. 이틀 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혼자 자문자답을 하며 아들의 방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이불을 마저 덮어주지 못한 것이 신경 쓰였지만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아 아이의 작은 우주에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16.
의자를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애써 울음을 참으며 벌개진 눈가를 문질렀다. 고지서를 정리하던 다니엘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의 직장이던 대학교의 로고가 박힌 편지를 빼들었다. 특별한 표시는 없었지만 그닥 기분은 좋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그는 남아있던 봉급에 대한 결제 내역를 훑으며 눈을 내렸다. 팔랑이는 종이 끝자락에 적힌 교수 휴 잭맨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꺼풀을 닫았다 올릴 때마다 오후에 봤던 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했던 말들이 다니엘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욱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은 그가 몸을 숙였다. 제 다리 사이로 깊게 몸을 숙인 그가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을 토했다. 차라리 죽어 없어진다면 좋을까. 그는 별 모양 전구가 반짝이는 작은 우주에서 자고 있을 아들이 떠올라 그 생각마저도 죄악 같았다.
17.
비몽사몽으로 마트를 다녀온 다니엘은 허브 솔트를 사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토마토를 볶던 그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스파게티 면이 들어있는 냄비가 소심하게 화를 내며 끓고 있었다. 가스렌지의 불을 모두 끈 그가 바지에 손을 닦으며 문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는 망설임없이 이웃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슬립 가운을 입은 하비에르가 문을 열었다. 문턱에 팔꿈치를 기대며 선 그가 다니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18.
다니엘은 스파게티 면을 꺼내 프라이팬으로 옮겨 담았다.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하비에르의 눈은 다니엘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목덜미, 옷깃, 등, 허리께, 그 보다 더 아래. 의자에서 일어난 그가 다니엘의 뒤로 다가가 앞치마 끈을 살짝 쥐었다. 다니엘은 뒷목에 닿아오는 숨결에 미간을 찌푸렸다. 느리게 끈을 푼 하비에르가 앞치마를 좀 더 당겼다. 티셔츠와 허리띠 사이의 맨살을 슬쩍 스친 손가락이 꽤 차가웠다. 끈을 다시 고쳐매주는 하비에르의 손길에 다니엘은 깊게 숨을 뱉었다. 모든 신경이 뒤로 쏠려 스파게티를 볶던 손을 멈추고 말았다. 그의 등에 하비에르의 손이 닿았다. 등골을 눌러오는 손끝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비에르가 손을 거두며 다시 의자에 가 앉았다.
19.
와이프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어?
아, 이젠 와이프가 아니지. 어디로 갔다고 했더라?
태평양이라니 팔자 좋네.
도망간 여자를 감싸주는 것도 정도껏 해.
피곤해보이는데 꽤 늦게까지 일을 했나봐.
20.
돌아왔어.
태평양 근처라고 하던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마.
이거나 들고 가.
괜찮아, 다시 잘 거니까.
21.
스파게티 접시를 든 하비에르가 한 손을 올려 전화를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니엘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 식탁 의자에 앉아 제 팔에 고개를 묻었다. 엉덩이에 닿은 의자가 따뜻해 그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어릴 적 제 자리를 항상 따뜻하게 데워놓던 하비에르가 떠올랐다. 같이 듣는 수업은 얼마 없었지만 그는 항상 앉아있던 자리를 내주며 옆으로 옮겨 앉았었다. 고개를 돌려 가스렌지를 쳐다봤다. 이제 갓 들어가 삐죽삐죽 솟아있는 스파게티 면이 보였다. 하비에르와 늘 함께 걷던 교정의 마른 나무가 생각나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22.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의 것을 매만졌다. 장난이나 다름없던 일이 어쩌다 이렇게 진지해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니엘의 생각이 토막났다. 하비에르가 좀 더 몸을 붙이며 그의 입술을 머금은 탓이었다. 화장실 문에 박은 뒤통수가 찌르르 울려왔지만 그보다 더 거슬리는 것은 혹 밖에 누군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혀끝을 짧게 깨물며 떨어진 하비에르가 고개를 숙여 다니엘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는 소름이 돋아 어깨를 움츠렸다. 아래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하비에르의 손이 너무 차가워 눈을 질끈 감았다. 발가락끝에서부터 힘이 풀리더니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끈적거리는 손이 다니엘의 허벅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다니엘은 눈을 떠 하비에르를 쳐다봤다. 그의 손이 닿은 부분이 간질거렸다. 그가 한 손으로 다니엘을 안아 몸을 돌렸다. 다니엘은 화장실 벽을 짚으며 몸을 숙였다. 짧은 머리가 살랑이는 뒷목에 하비에르의 숨이 닿았다. 목덜미를 간지르는 손길에 몸을 일으키자 접시를 들고 서있는 하비에르가 다니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의자가 뒤로 밀려났지만 다니엘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차가운 손이 볼을 어루만지다 떨어졌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허브 솔트를 손에 든 그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다니엘은 의자에서 일어나 가스렌지의 불을 껐다.
23.
아빠는 조금만 잘게.
오븐 안에는 니가 좋아하는 미트볼 스파게티가 있단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캠프 잘 다녀오렴.
24.
싱크대에 스파게티 접시가 있는 것을 확인한 다니엘이 미소를 지으며 메모지를 구겼다. 기지개를 켠 그가 어느새 어둑해진 창밖을 보며 커피를 내렸다.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컵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고작 한 시간 뒤에 잡혀진 일거리에 대한 문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책상 위에 컵을 내려놓은 뒤 욕실로 발을 옮겼다. 욕조에 몸을 뉘일 정도의 시간은 될 것 같았다. 따뜻한 물을 튼 그가 다시 거실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거실 창을 열고 나가 불을 붙였다. 스물스물 기어나온 하얀 연기가 바람에 흩어졌다. 다니엘은 손을 들어 팔을 매만졌다.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었다.
25.
노크를 한 다니엘은 문을 열어주는 남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나 반사적인 행동이었던 터라 그는 헛기침을 하며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다니엘은 그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부드럽게 올라갔다 떨어지는 입꼬리가 너무 가식적이어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다니엘은 그제야 남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매튜, 매튜 구드. 손을 내민 남자가 다니엘의 어깨를 잡아 안으로 당겼다. 다니엘은 눈을 감았다. 그는 매튜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26.
쇄골 사이를 누르자 다니엘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매튜는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엉덩이 사이가 쓰라려 고개를 돌렸다. 우악스럽게 턱을 붙잡아 돌리는 손길에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무표정한 매튜의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그 얼굴이 보기 싫어 다시 눈을 감았다. 무릎으로 눌러오는 허벅지가 아파와 다리를 조금 더 벌렸다. 다니엘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튜의 손이 그의 턱에서 떨어져나갔다. 뜨거운 손끝이 목젖에 닿았다. 점점 힘을 실어 누르자 다니엘은 손을 들어 매튜의 손을 잡았다. 다니엘의 한 쪽 허벅지를 받치고 있던 손이 올라왔다. 매튜의 손이 그의 목에 알맞게 안착했다. 숨이 막혔다. 여전히 허리를 움직이는 그가 다니엘의 목을 내리눌렀다. 넥타이에 묶인 손이 허우적거렸다. 눈꺼풀 위로 비치던 형광등 불빛이 사라지며 어둠이 자리를 틀었다.
27.
그는 역겨운 동성애자에요.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 동성애자라구요. 제 말이 이해가 안 되세요?
저 사람을 교단에 세워 내 자식을 가르치게 할 바에는 길에서 쓰레기를 줍고있는 노숙자를 데려오는 게 나을 거에요.
다니엘 크레이그 교수는 그 노숙자가 줍는 쓰레기만도 못하다구요.
28.
어떻게 나를 속일 수가 있어?
자그마치 13년이야.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
오, 남편이 동성애자인 것도 모르고 13년 동안 살아 온 멍청한 여자라고 하겠지!
이거 놔,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이 집에서 나갈 거야, 변호사한테 연락해서 이혼 소송 진행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29.
당신도 다른 남자를 만났잖아. 당신도 나와 살며 쉴 새 없이 바람을 폈잖아.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언제나 술 취한 엄마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잖아. 다니엘은 말을 삼켰다. 캐리어에 마구잡이로 옷을 쑤셔넣는 아내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코트를 입은 아내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에도 황망한 눈으로 시선을 모아잡지 못할 뿐이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아내의 구두굽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붙으며 소리를 냈다. 캐리어의 바퀴가 문턱에 걸렸다. 문을 잡고 있던 아내의 손이 미끄러져 내렸다. 실려온 바람에 거센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30.
눈을 뜬 다니엘은 제 손목이 여전히 넥타이에 묶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쑤셔오는 허리에 힘을 줘 침대에서 일어났다. 모텔 안을 둘러봤지만 매튜는 없었다. 매튜는 늘 그랬다. 정신을 차리고나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는 했다. 하다못해 휴지통도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본 다니엘이 어깨를 떨며 웃었다. 헐벗은 몸에는 여기저기 멍자국이 있었고 목에는 옅은 손자국이 나있었다. 금발의 나이 든 남자가 저를 보며 서있었다. 쪼그라든 제 물건 마저도 우스워 그는 계속해서 웃었다. 이 모든 게 너무 우스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라도 살아야했다.
31.
아직 집에 오지 않았나? 초인종을 눌러도 답이 없군. 기다리고 있겠네.
32.
딱딱한 글자가 뱀이 되어 다니엘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글로브 박스에 넣었다. 다른 문자는 오지 않은 걸 보니 오늘은 더 이상 일이 없는 듯 했다. 그는 모텔 주차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제 집 현관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남자를 보고 싶지가 않았다. 뒤가 아파왔지만 차라리 일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다니엘의 바램과 달리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죽은 것마냥 잠자고 있는 핸드폰을 조수석에 던졌다. 그는 결국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라디오에서는 아주 예전에 들었던 것만 같은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33.
차에서 내리려던 다니엘은 운적석 문을 열어주는 손길에 얼굴을 굳혔다. 땅을 딛는 발이 확실히 제 발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다니엘이 열쇠를 뽑아 내리자 콜린은 말없이 운전석을 닫았다. 진창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힘겹게 발을 옮긴 다니엘이 열쇠 구멍으로 손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콜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다니엘의 어깨를 눌렀다. 그는 부엌으로 가 커피를 내렸다. 싱크대에 기대있던 그는 거실 쇼파에 앉는 콜린을 응시했다. 컵에 커피를 따른 뒤 설탕을 꺼내어 네 스푼을 넣었다. 그 컵은 콜린의 것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제 행동이 거슬려 그는 빠르게 발을 옮겼다.
34.
그들은 피아노 밑에 있었다.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의 아래는 어두웠다. 다니엘은 안경을 벗은 콜린의 얼굴을 좋아했다.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다니엘의 손을 피하려다 피아노에 머리를 박은 콜린이 소리를 내며 그의 위로 엎어졌다.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자 제 위에 있는 콜린이 들썩였다. 그는 뒤통수를 문지르고 있었다. 몸을 딱 붙인 그가 다니엘의 등과 카펫 사이로 손을 밀어넣었다. 으스러지도록 꽉 안았다. 날개뼈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다니엘은 콜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콜린의 무릎에 힘이 들어갔다. 다니엘을 꽉 잡은 채 엉덩이에 힘을 주며 반복적인 허리짓을 했다. 방안에는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어쩌다 피아노 밑에서 이러고 있을까, 콜린의 어깨 너머로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가 보였다. 네 스푼.
35.
다니엘은 고개를 돌려 콜린의 손에 들린 컵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나란히 옆으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콜린이 무언가 말을 했지만 기억을 더듬는 탓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내의 이름이 들려왔던 것 같았다. 아들의 이름도 들려왔었던가. 인상을 찌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제 무릎에 손을 걸치고 있는 콜린의 손목이 보였다. 아주 오래 된 시계가 그의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 손목 시계를 알고 있었다. 저 시계 뒤에 적혀있는 문구도 알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듣던 노래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는 기억하고 천장을 보며 머리를 내저었다. 노래의 제목은 쉽게 털어졌다. 하지만 시계의 문구는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콜린에게, 다니엘.
36.
아이를 보고 싶어해.
벌써 1년 전 일이야, 다니엘.
아이도 보고 싶어할 거야.
이건 일반적이지 않아.
한 번 정도는 만나도 괜찮지 않겠어?
37.
헛소리하지 말라고 해요.
저한테는 늘 현실이에요.
아뇨,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에요.
이혼한 부부가 친구처럼 지내며 저녁 식사도 가끔 함께 하는 게 일반적인건가요?
잘난 당신 동생은 내 아들에게 항상 술 취한 엄마였죠. 왜 그가 그녀를 만나야하죠?
38.
제 손을 잡아오는 콜린의 손이 너무 따뜻해 다니엘은 눈을 감았다. 그 손목 시계는 당장 벗어버려요. 모난 글자가 입안을 맴돌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 뿌려진 별들이 점점 뿌옇게 변했다. 다니엘은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콜린은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다니엘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들은 이미 벼랑 끝에 함께 몰려 한 명은 추락하고 한 명은 내려다보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던가. 콜린은 종종 이성은 감정을 지배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다니엘의 손을 끌어내렸다. 다니엘에게 입을 맞추기위해 몸을 기울였다. 그는 콜린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기다란 속눈썹 사이로 빨개진 눈이 보였다. 가시 박힌 말이 튀어나와 콜린의 가슴을 찔렀다.
39.
예전과 많은 게 달라졌죠. 당신은 내게 돈을 줘야할 거에요.
40.
콜린이 떠난 자리를 보던 다니엘이 걸음을 옮겼다. 많은 양의 지폐가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황망한 눈이 집 안을 훑었다. 사는 게 지옥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추락하는 것이 제가 아니라 그였으면 좋겠다는 몹쓸 생각도 했다. 다니엘은 그를 만나 무엇을 배웠을까. 이치에 맞지 않는 자리에는 앉지 않는 것이 맞았다. 누군가를 속이며 사는 것은 제 삶을 갉아먹는 것과 같았다. 몸 안의 모든 피가 멈춰 심장이 돌처럼 딱딱해진 기분이 들었다. 사실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다. 이리 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령처럼 발을 움직였다. 부엌으로 가 식칼을 들었다. 제 몸 안에 다른 이가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다니엘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마냥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식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이의 우주가 그를 범람해왔다. 개구진 목소리가 다니엘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는 쭈그리고 앉아 입을 막았다. 손틈 새로 새어나온 울음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갔다. 의문을 느낀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다니엘은 울음을 참으며 띄엄띄엄 대답했다.
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렇단다.
1.
다니엘은 잠들어 있는 아들의 이마를 매만지다 손목 시계로 눈길을 옮겼다. 빠르게 쫓아 온 시간은 그가 나가야할 때가 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술을 떨어트렸다. 현관문이 잠긴 것을 꼼꼼하게 확인한 그가 몇 달 전 중고로 구매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여든 넘은 노인 같은 소리를 낸 자동차가 작게 떨리며 준비가 됐음을 알렸다. 라디오에서는 아주 예전에 들었던 것만 같은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다니엘은 핸들을 잡고있던 양손을 들어 두어번 말았다 폈다. 집 앞을 떠난 그의 차가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2.
맨체스터에 도착한 다니엘은 정갈한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는 8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는 손목 시계의 바늘을 보며 오늘은 한 건을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한 네이비색의 문이 열리자 고개를 든 다니엘은 모든 행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집 안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단단한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는 오래 된 고무 인형마냥 흐물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3.
자네가 이 일을 한 다는 걸 듣기는 했지. 몸을 판 돈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나? 정말 더럽기 그지 없군.
이렇게 해주는 게 좋아? 교수를 할 적에는 그렇게나 체면을 차리더니 지금 자네 꼴을 봐.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알겠어. 나 같아도 이런 몸이라면 여기저기 굴리고 싶겠군.
넣어달라고 해봐. 혹시 아나? 내가 돈을 더 얹어줄지?
그래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남자가 여기를 썼나?
4.
책상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뒤로 밀리고 있었다. 다니엘의 시선이 닿아있는 책상 모서리는 곧 책장에 부딪힐 것처럼 아슬한 공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배 밑에 깔린 책이 바스락거리며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가까이서 들려오는 휴의 숨소리였다. 다니엘의 허리를 강하게 부여잡은 그가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으며 강하게 그를 밀어붙였다. 다니엘은 아웃팅을 당해 교수직에서 물러나기 전 아쉬운 얼굴로 저에게 인사하던 휴가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갖은 단어들로 모욕을 주던 터라 목 마른 사람마냥 저를 찾는 휴가 낯설기도 했다. 발치에 걸려있는 허리띠가 계속해서 다니엘의 발목을 때리고 있었다. 그는 책상 끝을 좀 더 꽉 잡으며 밀리지 않기 위해 힘을 줄 뿐이었다.
5.
설마 여기서 씻고 갈 생각은 아니지?
6.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다니엘에게 건넸다. 그는 뒷주머니에 지폐를 대충 쑤셔넣었다. 엉덩이에 닿아오는 속옷이 찝찝해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혼자 모텔이라도 갈까, 다음 손님에게 가기 전에 샤워를 하기는 해야했다. 뒤돌려는 다니엘의 뒷통수를 보던 휴가 빠르게 발을 옮겼다. 그는 넋이 빠진 듯한 다니엘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꺼낸 그가 다니엘의 뒷주머니로 손을 옮겼다. 다니엘은 숨을 들이마신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휴의 코가 다니엘의 볼에 닿을 것만 같았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냄새가 났다.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선 휴가 서재로 들어갔고 다니엘은 그제야 숨을 뱉으며 그의 집을 나섰다.
7.
가까운 모텔에 도착한 다니엘은 트렁크에 있는 가방을 꺼내 들었다. 심드렁한 모텔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고는 키를 받아들고 계단을 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땀으로 젖은 티셔츠와 찝찝한 청바지를 빠르게 벗었다. 욕실로 들어가 속옷을 벗어 휴지통에 처넣었다. 물탱크가 익었는지 샤워기에서는 계속해서 미지근한 물이 나왔다. 그는 저를 얼릴 듯한 차가운 물을 맞고 싶었다.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물의 온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신경질이 났다. 싸구려 샤워 코롱에서는 와이프에게서 많이 나던 냄새가 났다. 다니엘은 거품이 묻은 샤워 타올을 집어던지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제 머리를 감싼 그의 팔에는 성하지 않은 거품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리지도 않았건만 그의 얼굴에는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8.
모텔 침대에 멍하게 누워있던 다니엘은 작게 울며 제 위치를 알리는 핸드폰 소리를 들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든 그는 화면 위로 떠오른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니엘은 저를 지명한 손님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런던에서 제일 가는 호텔의 이름만 봐도 그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는 항상 그곳을 선택했고 다니엘은 그를 만나기 위해 늘 그곳으로 갔다. 아직 두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한 시간 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침대에 누워 기이한 무늬가 그려진 시트를 덮으며 눈꺼풀을 닫았다.
9.
덜덜 거리는 차가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니엘은 알람을 맞추지 않은 자신을 탓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탄 그가 꽤 높은 층을 누르자 함께 오른 사람들이 흘낏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머리를 긁적이다 뒷주머니로 손을 옮긴 그는 휴에게서 받은 돈을 차에 두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깃하게 접혀있던 돈을 꺼내 정리한 뒤 앞주머니에 곱게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모두 그를 쳐다봤다. 티셔츠가 문제인가, 그는 다시 뒷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띵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은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텅 빈 엘리베이터가 웅웅거리며 내려갔다.
10.
미스터 페이스.
죄송해요, 조금 불편해서요.
시간 강사로는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하는 일보다는 시간 강사가 더 효율적일 겁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아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곳이 편하구요.
11.
리라고 부르라고 했잖아요.
제가 했던 이야기는 생각해보셨나요?
지금 하는 일보다는 충분히 효율적일 겁니다.
한 번 더 생각해봐요.
12.
환한 샹들리에가 다니엘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그는 쇼파 팔걸이에 부딪히는 정수리가 아파 손을 옮기고 싶었다. 제 손을 꽉 잡으며 깍지를 껴오는 리 탓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다니엘과 이마를 맞댄 채로 허리를 움직이던 리는 그의 손을 놔주며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 쇼파 등받이를 부여잡았다. 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다니엘을 보던 리가 다시 몸을 숙였다. 실려오는 무게에 배가 눌러져 잠시 숨이 막혔다. 다니엘의 손을 치우며 제 손으로 정수리를 감싸준 리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그의 안을 드나들었다. 다니엘은 눈을 감으며 아래에 집중했다. 꽃다발 같은 속눈썹이 아름다워 리는 그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호텔방에서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쇼파에서 살을 부비기 전 카펫에 쏟은 샴페인 때문일게 분명했다. 다니엘은 리의 살에서도 달달한 내가 나는 것 같아 그의 팔에 코를 파묻었다.
13.
가지마요, 아침까지 같이 있어요.
14.
다니엘은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늦게 도착한 탓도 있었지만 리가 시간을 연장한 탓도 있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글로브 박스에 우겨넣었다. 시동을 건 그가 엑셀을 밟으며 초조하게 핸들을 움직였다. 마트가 문을 닫았을까. 아들이 먹고 싶다던 미트볼 스파게티가 생각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룸미러를 살피던 그는 아들의 방에 스탠드를 켜놓지 않고 나온 것이 떠올랐다.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가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다니엘은 결국 핸들을 돌렸다. 아침 일찍 눈을 떠 마트를 갈 생각에 또 한 번 한숨이 나왔다.
15.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간 그가 스탠드를 키며 아들의 옆에 앉았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있는 아이가 사랑스러워 절로 미소가 나왔다. 아려오는 허리나 악몽 같았던 지난 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눈 앞에 있는 작은 생명을 옆에 두고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아들의 볼을 만지려던 다니엘은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발로 찼다.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덮어주던 다니엘은 가느다란 팔에 있는 주사 자국을 보고 말았다. 그는 가슴께가 저릿해오는 것을 느꼈다. 병원에 가는 날이 언제더라. 이틀 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혼자 자문자답을 하며 아들의 방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이불을 마저 덮어주지 못한 것이 신경 쓰였지만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아 아이의 작은 우주에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16.
의자를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애써 울음을 참으며 벌개진 눈가를 문질렀다. 고지서를 정리하던 다니엘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의 직장이던 대학교의 로고가 박힌 편지를 빼들었다. 특별한 표시는 없었지만 그닥 기분은 좋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그는 남아있던 봉급에 대한 결제 내역를 훑으며 눈을 내렸다. 팔랑이는 종이 끝자락에 적힌 교수 휴 잭맨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꺼풀을 닫았다 올릴 때마다 오후에 봤던 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했던 말들이 다니엘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욱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은 그가 몸을 숙였다. 제 다리 사이로 깊게 몸을 숙인 그가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을 토했다. 차라리 죽어 없어진다면 좋을까. 그는 별 모양 전구가 반짝이는 작은 우주에서 자고 있을 아들이 떠올라 그 생각마저도 죄악 같았다.
17.
비몽사몽으로 마트를 다녀온 다니엘은 허브 솔트를 사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토마토를 볶던 그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스파게티 면이 들어있는 냄비가 소심하게 화를 내며 끓고 있었다. 가스렌지의 불을 모두 끈 그가 바지에 손을 닦으며 문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는 망설임없이 이웃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슬립 가운을 입은 하비에르가 문을 열었다. 문턱에 팔꿈치를 기대며 선 그가 다니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18.
다니엘은 스파게티 면을 꺼내 프라이팬으로 옮겨 담았다.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하비에르의 눈은 다니엘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목덜미, 옷깃, 등, 허리께, 그 보다 더 아래. 의자에서 일어난 그가 다니엘의 뒤로 다가가 앞치마 끈을 살짝 쥐었다. 다니엘은 뒷목에 닿아오는 숨결에 미간을 찌푸렸다. 느리게 끈을 푼 하비에르가 앞치마를 좀 더 당겼다. 티셔츠와 허리띠 사이의 맨살을 슬쩍 스친 손가락이 꽤 차가웠다. 끈을 다시 고쳐매주는 하비에르의 손길에 다니엘은 깊게 숨을 뱉었다. 모든 신경이 뒤로 쏠려 스파게티를 볶던 손을 멈추고 말았다. 그의 등에 하비에르의 손이 닿았다. 등골을 눌러오는 손끝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비에르가 손을 거두며 다시 의자에 가 앉았다.
19.
와이프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어?
아, 이젠 와이프가 아니지. 어디로 갔다고 했더라?
태평양이라니 팔자 좋네.
도망간 여자를 감싸주는 것도 정도껏 해.
피곤해보이는데 꽤 늦게까지 일을 했나봐.
20.
돌아왔어.
태평양 근처라고 하던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마.
이거나 들고 가.
괜찮아, 다시 잘 거니까.
21.
스파게티 접시를 든 하비에르가 한 손을 올려 전화를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니엘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 식탁 의자에 앉아 제 팔에 고개를 묻었다. 엉덩이에 닿은 의자가 따뜻해 그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어릴 적 제 자리를 항상 따뜻하게 데워놓던 하비에르가 떠올랐다. 같이 듣는 수업은 얼마 없었지만 그는 항상 앉아있던 자리를 내주며 옆으로 옮겨 앉았었다. 고개를 돌려 가스렌지를 쳐다봤다. 이제 갓 들어가 삐죽삐죽 솟아있는 스파게티 면이 보였다. 하비에르와 늘 함께 걷던 교정의 마른 나무가 생각나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22.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의 것을 매만졌다. 장난이나 다름없던 일이 어쩌다 이렇게 진지해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니엘의 생각이 토막났다. 하비에르가 좀 더 몸을 붙이며 그의 입술을 머금은 탓이었다. 화장실 문에 박은 뒤통수가 찌르르 울려왔지만 그보다 더 거슬리는 것은 혹 밖에 누군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혀끝을 짧게 깨물며 떨어진 하비에르가 고개를 숙여 다니엘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는 소름이 돋아 어깨를 움츠렸다. 아래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하비에르의 손이 너무 차가워 눈을 질끈 감았다. 발가락끝에서부터 힘이 풀리더니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끈적거리는 손이 다니엘의 허벅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다니엘은 눈을 떠 하비에르를 쳐다봤다. 그의 손이 닿은 부분이 간질거렸다. 그가 한 손으로 다니엘을 안아 몸을 돌렸다. 다니엘은 화장실 벽을 짚으며 몸을 숙였다. 짧은 머리가 살랑이는 뒷목에 하비에르의 숨이 닿았다. 목덜미를 간지르는 손길에 몸을 일으키자 접시를 들고 서있는 하비에르가 다니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의자가 뒤로 밀려났지만 다니엘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차가운 손이 볼을 어루만지다 떨어졌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허브 솔트를 손에 든 그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다니엘은 의자에서 일어나 가스렌지의 불을 껐다.
23.
아빠는 조금만 잘게.
오븐 안에는 니가 좋아하는 미트볼 스파게티가 있단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캠프 잘 다녀오렴.
24.
싱크대에 스파게티 접시가 있는 것을 확인한 다니엘이 미소를 지으며 메모지를 구겼다. 기지개를 켠 그가 어느새 어둑해진 창밖을 보며 커피를 내렸다.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컵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고작 한 시간 뒤에 잡혀진 일거리에 대한 문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책상 위에 컵을 내려놓은 뒤 욕실로 발을 옮겼다. 욕조에 몸을 뉘일 정도의 시간은 될 것 같았다. 따뜻한 물을 튼 그가 다시 거실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거실 창을 열고 나가 불을 붙였다. 스물스물 기어나온 하얀 연기가 바람에 흩어졌다. 다니엘은 손을 들어 팔을 매만졌다.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었다.
25.
노크를 한 다니엘은 문을 열어주는 남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나 반사적인 행동이었던 터라 그는 헛기침을 하며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다니엘은 그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부드럽게 올라갔다 떨어지는 입꼬리가 너무 가식적이어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다니엘은 그제야 남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매튜, 매튜 구드. 손을 내민 남자가 다니엘의 어깨를 잡아 안으로 당겼다. 다니엘은 눈을 감았다. 그는 매튜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26.
쇄골 사이를 누르자 다니엘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매튜는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엉덩이 사이가 쓰라려 고개를 돌렸다. 우악스럽게 턱을 붙잡아 돌리는 손길에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무표정한 매튜의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그 얼굴이 보기 싫어 다시 눈을 감았다. 무릎으로 눌러오는 허벅지가 아파와 다리를 조금 더 벌렸다. 다니엘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튜의 손이 그의 턱에서 떨어져나갔다. 뜨거운 손끝이 목젖에 닿았다. 점점 힘을 실어 누르자 다니엘은 손을 들어 매튜의 손을 잡았다. 다니엘의 한 쪽 허벅지를 받치고 있던 손이 올라왔다. 매튜의 손이 그의 목에 알맞게 안착했다. 숨이 막혔다. 여전히 허리를 움직이는 그가 다니엘의 목을 내리눌렀다. 넥타이에 묶인 손이 허우적거렸다. 눈꺼풀 위로 비치던 형광등 불빛이 사라지며 어둠이 자리를 틀었다.
27.
그는 역겨운 동성애자에요.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 동성애자라구요. 제 말이 이해가 안 되세요?
저 사람을 교단에 세워 내 자식을 가르치게 할 바에는 길에서 쓰레기를 줍고있는 노숙자를 데려오는 게 나을 거에요.
다니엘 크레이그 교수는 그 노숙자가 줍는 쓰레기만도 못하다구요.
28.
어떻게 나를 속일 수가 있어?
자그마치 13년이야.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
오, 남편이 동성애자인 것도 모르고 13년 동안 살아 온 멍청한 여자라고 하겠지!
이거 놔,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이 집에서 나갈 거야, 변호사한테 연락해서 이혼 소송 진행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29.
당신도 다른 남자를 만났잖아. 당신도 나와 살며 쉴 새 없이 바람을 폈잖아.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언제나 술 취한 엄마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잖아. 다니엘은 말을 삼켰다. 캐리어에 마구잡이로 옷을 쑤셔넣는 아내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코트를 입은 아내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에도 황망한 눈으로 시선을 모아잡지 못할 뿐이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아내의 구두굽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붙으며 소리를 냈다. 캐리어의 바퀴가 문턱에 걸렸다. 문을 잡고 있던 아내의 손이 미끄러져 내렸다. 실려온 바람에 거센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30.
눈을 뜬 다니엘은 제 손목이 여전히 넥타이에 묶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쑤셔오는 허리에 힘을 줘 침대에서 일어났다. 모텔 안을 둘러봤지만 매튜는 없었다. 매튜는 늘 그랬다. 정신을 차리고나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는 했다. 하다못해 휴지통도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본 다니엘이 어깨를 떨며 웃었다. 헐벗은 몸에는 여기저기 멍자국이 있었고 목에는 옅은 손자국이 나있었다. 금발의 나이 든 남자가 저를 보며 서있었다. 쪼그라든 제 물건 마저도 우스워 그는 계속해서 웃었다. 이 모든 게 너무 우스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라도 살아야했다.
31.
아직 집에 오지 않았나? 초인종을 눌러도 답이 없군. 기다리고 있겠네.
32.
딱딱한 글자가 뱀이 되어 다니엘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글로브 박스에 넣었다. 다른 문자는 오지 않은 걸 보니 오늘은 더 이상 일이 없는 듯 했다. 그는 모텔 주차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제 집 현관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남자를 보고 싶지가 않았다. 뒤가 아파왔지만 차라리 일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다니엘의 바램과 달리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죽은 것마냥 잠자고 있는 핸드폰을 조수석에 던졌다. 그는 결국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라디오에서는 아주 예전에 들었던 것만 같은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33.
차에서 내리려던 다니엘은 운적석 문을 열어주는 손길에 얼굴을 굳혔다. 땅을 딛는 발이 확실히 제 발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다니엘이 열쇠를 뽑아 내리자 콜린은 말없이 운전석을 닫았다. 진창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힘겹게 발을 옮긴 다니엘이 열쇠 구멍으로 손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콜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다니엘의 어깨를 눌렀다. 그는 부엌으로 가 커피를 내렸다. 싱크대에 기대있던 그는 거실 쇼파에 앉는 콜린을 응시했다. 컵에 커피를 따른 뒤 설탕을 꺼내어 네 스푼을 넣었다. 그 컵은 콜린의 것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제 행동이 거슬려 그는 빠르게 발을 옮겼다.
34.
그들은 피아노 밑에 있었다.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의 아래는 어두웠다. 다니엘은 안경을 벗은 콜린의 얼굴을 좋아했다.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다니엘의 손을 피하려다 피아노에 머리를 박은 콜린이 소리를 내며 그의 위로 엎어졌다.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자 제 위에 있는 콜린이 들썩였다. 그는 뒤통수를 문지르고 있었다. 몸을 딱 붙인 그가 다니엘의 등과 카펫 사이로 손을 밀어넣었다. 으스러지도록 꽉 안았다. 날개뼈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다니엘은 콜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콜린의 무릎에 힘이 들어갔다. 다니엘을 꽉 잡은 채 엉덩이에 힘을 주며 반복적인 허리짓을 했다. 방안에는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어쩌다 피아노 밑에서 이러고 있을까, 콜린의 어깨 너머로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가 보였다. 네 스푼.
35.
다니엘은 고개를 돌려 콜린의 손에 들린 컵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나란히 옆으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콜린이 무언가 말을 했지만 기억을 더듬는 탓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내의 이름이 들려왔던 것 같았다. 아들의 이름도 들려왔었던가. 인상을 찌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제 무릎에 손을 걸치고 있는 콜린의 손목이 보였다. 아주 오래 된 시계가 그의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 손목 시계를 알고 있었다. 저 시계 뒤에 적혀있는 문구도 알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듣던 노래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는 기억하고 천장을 보며 머리를 내저었다. 노래의 제목은 쉽게 털어졌다. 하지만 시계의 문구는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콜린에게, 다니엘.
36.
아이를 보고 싶어해.
벌써 1년 전 일이야, 다니엘.
아이도 보고 싶어할 거야.
이건 일반적이지 않아.
한 번 정도는 만나도 괜찮지 않겠어?
37.
헛소리하지 말라고 해요.
저한테는 늘 현실이에요.
아뇨,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에요.
이혼한 부부가 친구처럼 지내며 저녁 식사도 가끔 함께 하는 게 일반적인건가요?
잘난 당신 동생은 내 아들에게 항상 술 취한 엄마였죠. 왜 그가 그녀를 만나야하죠?
38.
제 손을 잡아오는 콜린의 손이 너무 따뜻해 다니엘은 눈을 감았다. 그 손목 시계는 당장 벗어버려요. 모난 글자가 입안을 맴돌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 뿌려진 별들이 점점 뿌옇게 변했다. 다니엘은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콜린은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다니엘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들은 이미 벼랑 끝에 함께 몰려 한 명은 추락하고 한 명은 내려다보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던가. 콜린은 종종 이성은 감정을 지배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다니엘의 손을 끌어내렸다. 다니엘에게 입을 맞추기위해 몸을 기울였다. 그는 콜린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기다란 속눈썹 사이로 빨개진 눈이 보였다. 가시 박힌 말이 튀어나와 콜린의 가슴을 찔렀다.
39.
예전과 많은 게 달라졌죠. 당신은 내게 돈을 줘야할 거에요.
40.
콜린이 떠난 자리를 보던 다니엘이 걸음을 옮겼다. 많은 양의 지폐가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황망한 눈이 집 안을 훑었다. 사는 게 지옥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추락하는 것이 제가 아니라 그였으면 좋겠다는 몹쓸 생각도 했다. 다니엘은 그를 만나 무엇을 배웠을까. 이치에 맞지 않는 자리에는 앉지 않는 것이 맞았다. 누군가를 속이며 사는 것은 제 삶을 갉아먹는 것과 같았다. 몸 안의 모든 피가 멈춰 심장이 돌처럼 딱딱해진 기분이 들었다. 사실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다. 이리 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령처럼 발을 움직였다. 부엌으로 가 식칼을 들었다. 제 몸 안에 다른 이가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다니엘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마냥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식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이의 우주가 그를 범람해왔다. 개구진 목소리가 다니엘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는 쭈그리고 앉아 입을 막았다. 손틈 새로 새어나온 울음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갔다. 의문을 느낀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다니엘은 울음을 참으며 띄엄띄엄 대답했다.
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렇단다.
아... 찌통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삭제몇번을 봐도 너무 좋다.... 선생님 사랑해요ㅠㅠㅠㅠㅠ
답글삭제선생님 진짜 너무 좋아서 죽을것 같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