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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는 천진난만하게 웃고있는 아들을 바라보았어. 아이는 장례식장의 가라앉은 분위기에 주눅들어있다가 집에 돌아오자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뛰놀기 시작했지.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렸어. 너무 어렸지. 맨중맨은 할머니와 함께있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쳐다보고 서재로 들어갔어. 책상위에는 큰 상자가 놓여있었지. 와이프의 직장에서 그녀의 책상을 정리하고 보내준 물건이 담겨있었어. 휴는 상자를 조심히 열었어. 가족사진이 있는 액자가 제일 위에 올려져있었지. 휴는 옅게 미소를 짓고 액자를 책상위에 올려두었어. 그리곤 그녀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해갔지.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던중 휴는 편지와 작은 나무상자를 발견하게돼. 휴는 상자를 흔들어봤지. 안쪽에서는 달그락거리며 무언가가 들어있었지만 잠겨있어서 열어볼순 없었어. 편지봉투속은 비어져있었어. 의아하게 생각하며 상자를 살펴보았지. 상자 바닥에는 '나의 다니에게'라는 와이프의 글씨가 적혀있었지. 아주 충동적이었어. 휴는 그녀의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고 곧 자신이 찾고자 하는 이름을 발견했지. 'Daniel Craig' 이 상자의 주인은 이 사람일거라는 생각은 확신에 가까웠어. 휴는 이 상황을 바꿔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자신을 움직이게해줄 핑계거리가 필요했을지도 몰라. 휴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어. 전화 너머로 처음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어.
다니엘은 초인종소리에 밖으로 걸어갔어. 아마 2시간 전 자신에게 전화를 했던 그 남자일거야. 그가 전해준 소식은 충격적이었어. 그녀의 부고는 너무나 갑작스러웠었으니까. 현관문을 열자 지쳐보이는듯한 인상의 남자가 작은 상자를 들고 서있었어. 다니엘을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지. 남자의 두눈을 충혈되있었어. 아마 많이 울었을거야.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다니엘은 들어오라며 현관에서 조금 비켜섰어. 휴는 거절했지만 다니엘은 그를 그렇게 보내면 안될것 같았어. 억지로 그를 집안으로 데려와 푹신한 쇼파에 앉히고 휴에게 따뜻한 차를 타다줬어. 휴는 그제야 작게 웃으며 다니엘을 쳐다봤지. 다니엘도 마주보며 웃었어. 그리고는 그가 가져온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봤지.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았어. 나이프를 상자사이에 넣고 비틀자 상자가 열렸어. 휴는 상자안을 쳐다봤어. 눈만 조각한 작은 조각이 들어있었지. "당신이네요." 휴는 조각을 보고 말했어. 다니엘은 웃으며 탁자위에 상자를 올려뒀지. "날 만들어주겠다고 열심히 만들더니. 결국 눈만 만들었나봐요." 휴는 처음듣는 이야기에 놀란듯 다니엘을 쳐다봤어. "제 아내와 친한 사이었습니까?" 다니엘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어. 그녀를 만나고 둘도없는 친구가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아내가 죽고 처음으로 휴는 환하게 웃었어. 그러다가 그리움에 눈물을 뚝뚝 흘렸지. 다니엘은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달래줬어.
그 날 처음만나고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어. 다니엘은 아이같다가도 휴보다도 더 어른스럽기도 했었었어. 휴의 아들도 그를 너무나 좋아했었지. 둘 사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 같았지. 그런데 어느날이었어 다니엘에게서 상상도 못할 말을 듣게된거야. "난 널 사랑하는 것 같아." 휴는 하던일을 멈추고 놀라 다니엘을 쳐다봤어. 휴는 더듬거리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 물론 진지하게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 그 말을 들은순간 엉망으로 뒤죽박죽되버린 머릿속으로는 제대로된 생각을 하기는 불가능했었으니까. 다니엘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냥 뭐 그렇다고." 라고 말하며 방안을 빠져나갔어.
이후로 휴는 다니엘에게 평소처럼 대할 수가 없었어. 되도록이면 전화를 피했고 어쩌다가 마주치면 최대한 이야기가 그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했어. 하지만 다니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보였어. 휴는 다니엘이 그냥 지나치듯 한 말인데 자신이 너무 신경쓰는건가 민망해졌어. 어느날이었지 우연히 다니엘과 손이 닿자 휴는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한발자국 물러섰어. 휴는 자신의 과잉반응에 민망한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갔어. 차마 다니엘을 쳐다볼 수 없었어. 이층에서 휴의 아들이 다니엘이 왔다는 말에 좋아 달려 내려왔지. 현관앞에 서있는 다니엘의 다리를 껴안으며 왜 이렇게 늦었냐며 다니엘을 쳐다봤어. 다니엘은 아이와 눈을 맞추기위해 무릎을 굽혔지. "많이 기다렸어?" 휴는 다니엘의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뒤를 돌아봤어. 휴의 아들은 작은손으로 다니엘의 볼을 쓰다듬어 주고있었어. "아저씨 왜 울어요?" 아이의 말에 다니엘은 그제야 자신이 울고있다는걸 깨달았어. 황급히 눈물을 닦아냈지만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지. 휴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짓을 한건지 알아챘지. 아무렇지도 않았던게 아니었던거야. 자신은 그 시간동안 계속 다니엘에게 상처를 줬던거야. 휴는 아들에게 잠시만 이층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고 다니엘을 손을 잡아 끌어 방안으로 들어갔어. 방까지 끌려가면서 다니엘은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었지. 휴는 울고있는 다니엘에게 손수건을 건내줬어. 다니엘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어. "그런거 아니야 휴. 난...나도...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휴는 물끄러미 다니엘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 "내가 확실히 했어야 하는건데 미안해 다니엘." 다니엘은 고개를 들고 휴를 쳐다봤어. "내게 너는 정말 소중한 친구야. 널 잃고 싶지 않아." 휴가 곤란한듯한 표정으로 말했어. 다니엘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곤 조용히 속삭였지. "알아." 다니엘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묻기로해.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다니엘에겐 이 상황은 줄타기와 같았어. 혹시나 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까 행동하나하나 조심히 하게되고 되도록이면 그와 접촉하기를 피했었어.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다니엘은 무서웠어. 다니엘이 점점 지쳐갈때쯤 우연히 휴의 친구인 하비에르를 만나게됐어. 그는 아주 독특한 억양을 가진 남자라서 다니엘은 그가 말할때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어. 물론 유머감각도 뛰어난 사람이었어. 다니엘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휴의 집안 거실에 서서 다니엘은 정원에 서있는 휴와 그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어. "드라마같네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하비에르의 목소리에 다니엘이 화들짝 놀랐어. 하비에르는 웃으며 다니엘을 쳐다봤어. 이상할정도로 집요하게말이야. 다니엘은 멋쩍은듯 손을 쥐었다 펼치며 웃었어. "휴를 좋아하죠?" 다니엘은 손을 떨며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 하비에르는 다니엘의 뺨을 쓸었어. 다니엘은 몸을 뒤로 피했지만 하비에르를 쫒아와 다니엘을 놓치지 않았어. "거짓말 말아요. 당신 눈빛만 보면 누구나 다 알것같은데." 하비에르는 손을 올려 다니엘의 속눈썹을 조심스럽게 만졌어. 다니엘이 눈을 깜박일때마다 하비에르의 손가락을 간지럽혔지. "저 바보는 왜 모를걸요. 당신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다는걸." 하비에르는 손을 내려 다니엘의 가슴위로 손을 가져갔어. "물론 마음도 예쁜것 같지만." 하비에르는 웃으면서 손을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으며 다니엘의 볼에 가볍게 입맞추고 휴가 서있는 쪽을 바라봤어. "어, 틀킨것같네." 하비에르는 하하 웃으며 자신들을 지켜보고있던 휴에게 손을 흔들어줬어. 휴는 화가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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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는 턱을 괴고 재미있다는듯 휴를 쳐다봤어. 신문을 읽던 휴는 안경을 벗고 하비에르를 쳐다봤지. 시선이 자신에게로 오자 하비에르는 더 크게 웃었어. 휴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지. "너 게이였어?" 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비에르는 웃음을 터트리며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어. "아니란건 네가 더 잘 알잖아." 휴는 인상을 구기며 발끈한듯 큰소리로 '그럼 왜?!' 라고 말했지. 하비에르는 의자에 깊게 등을 기댔어. "다니엘은 특별해." 하비에르는 미소를 지었어. "너도 잘 알잖아. 너도 그렇게 느끼면서." 휴는 그게 무슨말이냐며 자리에서 일어났지. 하비에르는 그냥 웃을뿐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어. 휴는 그의 웃음이 어딘가 승리자의 미소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어. 휴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해. 그래야될것 같았거든.
하비에르는 장난이 심한 사람이었어. 다니엘은 그게 싫지 않았어. 억지로 웃기 시작해도 결국 하비에르는 다니엘을 진짜로 웃게 만들어 줬었으니까. 원래는 휴와 셋이서 모이던 세 사람이었는데 점점 다니엘과 하비에르는 단둘이 만나는 횟수도 잦아졌었지. 만나면 특별한건 없었어 그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축구를 보거나 밥을 먹는게 전부였으니까. 아니 특별한게 하나 있다면 바로 하비에르의 과한 스킨십이었어. 목과 볼에 입맞추거나 뒤에서 허리를 껴안는 남자들끼리는 과한 스킨십 말이야. 처음엔 화들짝 놀랐었어.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를정도로 당황했었지. 하지만 하비에르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굴었어. 살갑고 다정하게.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걸 알아채고 먼저 다가와서 조심스래 다니엘의 손을 잡아주며 뺨에 입맞춰주곤 했었어. 다니엘은 그런 다정함이 낯설었어. 가끔이지만 다니엘은 진짜 눈물이 날것 같았지
오랜만에 휴의 집에서 셋이 모이게 됐어. 휴는 못본 사이 많이 친해진 둘을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어. 하지만 곧 자신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터트렸지. 이상했어.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 저녁을 다 먹고 휴와 다니엘이 설거지를 하기로해. 다니엘은 오랜만에 만난 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어. 휴는 이따금 웃음을 터트렸지. 다니엘은 정말 기분이 좋아보였어. 그날의 생기를 되찾은듯 했어. 휴와 처음 만나고 아내를 잃은 휴를 달래줬던 다니엘로 말이야. 하비에르가 다가와 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뭐가 그렇게 웃겨?" 라고 말했지. 다니엘은 웃으며 하비에르를 쳐다봤어. 휴는 그런 다니엘을 쳐다봤지.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다니엘은 딱히 자세힌 설명하진 않았지만 하비에르는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어. "나 가봐야할것 같아." 하비에르는 둘의 어깨에 올리고 있던 팔을 당겨 둘의 볼에 뽀뽀를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하며 나갔어. 하비에르의 뒤모습을 보며 다니엘이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지. 휴는 그런 다니엘을 쳐다봤어. 하비에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둘은 다시 접시를 헹구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툭, 어깨가 부딪혔지. 다니엘은 주춤 물러섰어. 방금까지 웃고 있던 얼굴이 서서히 굳어져갔지. 휴는 놀라서 다니엘을 쳐다봤어. 굳은표정으로 서있던 다니엘은 다시금 웃으며 말했어. "미안." 휴는 아무말도 하지못했어. 더이상 다니엘을 쳐다볼 수 도 없었지. 휴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한 기분이었어.
휴는 갑자기 내리는 빗물소리에 창밖을 쳐다봤어. 방금까지 맑았던 날씨가 무색하게 거센 빗방울이 어두운 밤인데도 보일정도로 거세게 내리고 있었지. 갑작스러운 소나기구나 하며 무심코 고개를 돌리려다 창밖의 낯설지않은 사람을 발견했어. 휴는 서둘러 현관으로 걸어갔지. 동시에 초인종이 울렸어.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며 현관앞에 서있던 다니엘은 생각보다 빨리 열린 문을 보고 놀라 고개를 들었어. 휴가 놀란 표정으로 다니엘을 내려다보고 있었지. "우산도 안쓰고 온거야?" 눈으로 들어오던 빗물때문에 따가웠던 다니엘은 손으로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어. "갑자기 비가 내려서 깜짝 놀랐어." 다니엘은 조금 높은 목소리로 웃었어. 그는 기분이 좋아보였어.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휴는 미소를 지어었어. "이것만 주고 가봐야돼." 다니엘은 재킷속에서 책을 꺼냈어. "젖진 않았을거야." 다니엘은 휴에게 책을 건냈어. "네가 좋아할것 같아서. 들어가서 열어봐." 휴는 엉망으로 젖어버린 다니엘에 비해 젖지않은 책을 내려봤어. 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다니엘은 물끄러미 휴를 쳐다보고 있다가 멋쩍은듯 웃으며 말했어 "이제 가볼게." 다니엘이 현관 계단을 내려가자 서둘러 휴가 다니엘의 팔을 잡아 세웠어. 다니엘은 놀라 휴를 쳐다봤어. 손 아래 젖은 옷 너머의 다니엘의 체온이 느껴졌어. 휴는 말을 까먹은 사람처럼 다니엘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알 수 없었어. 그저 이렇게 다니엘을 보내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우산빌려줄게." 다니엘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휴는 다니엘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왔어. 욕실에 다니엘을 밀어 넣고 수건을 다니엘의 어깨에 둘러줬어. 그제야 추위가 몰려온건지 다니엘이 살짝 몸을 떨었어. 휴는 다니엘을 쳐다봤어. 비에 젖어서 조금 어두워진 짧은 금발, 젖어서 아래로 가라앉은 속눈썹, 차가운 빗물에 창백해진 피부. 휴는 망설이지 않았어. 아니 망설이지 못했어. 휴는 다니엘을 벽으로 밀치고 다니엘에게 입맞췄어. 하비에르의 말이 맞았어. '다니엘은 특별해.' 그는 특별했어. 이 이상하리만치 소름끼치는 키스가 그랬어. 휴의 심장은 쿵쿵 뛰기 시작했어. 첫사랑이 시작된 소년의 심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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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는 거칠지만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대었지. 다니엘의 입술은 차가웠어. 그 사실은 휴의 심장을 더 뛰게 만들었어. 자신의 입술과는 다른 체온이 덕에 더 확실히 그의 입술이 느껴졌었거든. 입을 열고 혀를 엉키지 않아도, 가벼운 버드키스만으로도 휴의 심장은 쿵쿵 거렸어. 뛰는 심장덕에 귀가 멍멍해지고 정신이 아득해 질때쯤 팔에 차가운 손이 닿았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화들짝 놀라 다니엘을 뿌리쳤지. 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한건지 잠시동안 판단할 수 가 없었어. 다니엘은 벽에 세게 등을 박았음에도 전혀 아픔을 느껴지 못할정도로 놀랐었지. 둘은 조용히 서 있었어. 휴는 힐끔 다니엘을 쳐다봤지. 휴의 손을 떨리고 있었어. 뭔지 모르겠지만 그는 두려웠어. 다니엘이라는 존재 자체가 뭔가를 크게 들어지게 만들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어. 다니엘은 특별했어. 휴 자신에게 말이야. 휴는 떨리는 손을 힘을 주고 꽉 쥐었다 펼쳤어. 떨림이 가시는것 같았지. 휴는 손을 들어 다니엘 어깨위에 올려진 수건으로 젖은머리를 닦아주기 시작했어. 둘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 하지만 분명 1분전의 둘과는 달랐어. 휴는 평소 따라다니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또다른 답답함이 생긴 느낌이었지. 하지만 괜찮은 느낌이었어. 오히려 기분이 좋았어. 뱃속부터 간질간질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었지. 다니엘은 가만히 서서 휴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어. 자신이 꿈을 꾸고있나 싶었지. 그때 살짝 뺨위로 휴의 손이 스쳤어. 다니엘은 휴의 얼굴을 쳐다봤지. 둘은 서로를 마주봤어. 다니엘이 살짝 웃자 휴도 함께 웃어줬지. 다니엘은 팔다리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어.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휴가 다니엘의 귀를 만지며 말했어. "마른옷 가져다 줄게. 기다리고 있어."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지. 휴가 욕실에서 나가고 다니엘은 자리에 주저 앉았어.
휴는 욕실을 나와 방으로 걸어가고 있었어. 현관 앞에는 다니엘이 가져왔던 책이 바닥에 떨어져있었지. 그제야 휴는 자신이 저 책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있었다는걸 알아챘어. 아마 다니엘을 데리고 욕실에 갈때 떨어트린 모양이야. 휴는 물기에 젖은 손을 바지에 닦고 책을 주워 들었어. 책의 표지에 적힌 이름을 보고 쿵하고 심장이 가라 앉는 기분이었어. 책의 첫장을 넘기자 다니엘과 함께 찍힌 어릴적 아내의 모습이 보였어. 방금까지 뜨겁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지. 둘이 어렸을적 함께 여행을 다니며 사진 스크랩해둔 책이었어. 마지막 장을 넘길때쯤 휴는 등뒤에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다시 양손이 떨리고 있었어. 휴는 그 책을 놓칠것 같은 사람마냥 꽉 쥐고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갔어. 조심스럽게 탁자위에 책을 올려두고 표지위의 아내의 이름을 손으로 쓸었어. 툭툭 하며 탁자위로 눈물이 쏟아졌지. 그건 슬픔이 아니었어. 그의 죄책감이었어.
기다려도 휴가 오질 않자 다니엘은 욕실을 나왔어. 분명 욕실에 들어가기 전에 바닥에 떨어져있던 책이 보이지 않았어. 그제야 다니엘은 휴가 오지않는 이유를 알게 됐지. 다니엘은 휴의 방앞으로 걸어갔어. 휴는 울고있었지. 그의 눈물을 보자 무거웠던 팔다리가 더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어.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휴의 이름을 불렀어. 휴는 화들짝 놀라 다니엘을 쳐다봤어. 다니엘은 작게 웃었어. 휴는 주춤 뒤로 물러섰지. "이건..." 휴의 물음에 다니엘은 대답하고 싶었어. 하지만 목소리가 더이상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어. "이걸 가져다 주러온거였어..." 휴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탁자에 기대섰어. "넌 내 아내의 친구였어...난...." 휴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쥐었지. "나는...난...뭘한거지?" 자책하는 듯한 목소리었어. 다니엘은 이젠 억지로도 웃을 수가 없었어. 둘은 언제나 타이밍이 좋지않았어.
눈물을 흘리던 휴는 고개를 들었어. 방금까지 문앞에 서있던 다니엘이 보이지 않았어. 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돌아다녔어. 다니엘은 보이지 않았지. "다니엘!" 휴는 다니엘의 이름을 소리쳤어. 하지만 집안은 조용했지. 휴는 현관을 열고 밖을 둘러봤어. 멀리 걸어가는 다니엘의 뒷모습이 보였지. 휴는 다니엘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그를 쫒아가자고 마음먹었어. 그때였지. "대디?" 휴의 아들이 잠에서 깬듯 눈을 비비고 2층 계단 위에 서있었지. 휴는 굳은채 문앞에 서있었어. 자신이 무언가의 경계에 서있는듯한 기분이 들었지. 어느쪽으로든 그는 움직일 수 없었어. "다니가 왔었어?" 그의 아들이 계단을 내려와
휴의 다리를 껴안았지. 휴는 밖을 쳐다봤어. "...그는 갔어." 자신은 다니엘을 쫒아갈수없었어. 휴는 다리를 굽히고 아들을 끌어안았어. " 그는 가버렸어..."더이상 밖을 보지 못하고 현관을 닫았어. 다행히 비는 그쳤어. 그는 더 이상 젖지 않을거야. 휴는 그 사실로 자신의 죄책감을 위로하기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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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달이었어. 휴의 앞에 다시 다니엘이 나타나기까지. 한번이 어려웠지 두번은 쉬웠어. 아무일이 없던것 처럼. 다니엘은 그렇게 하는것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사람이었어. 하지만 휴는 아니었어. 그럴 수가 없었지. 아무렇지도 않은척, 없는 일인척 할 수록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다니엘은 그걸 알아챘었어. 하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어. 휴가 이상하다는건 말이야. 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건 다니엘 뿐이었지. 다니엘이 할 수 있는건 단 하나였어. 그가 잊을수 있도록 도와주는것. 그래서 휴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주 서서히, 천천히 그에게서 멀어졌어.
둘은 여전히 친구였어.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았지. 예전에는 서로를 잘 이해했어, 딱히 말하지 않고 눈만 마주쳐도 말이야. 그런데 이젠 아니었어. 아니 어쩌면 알고있는데도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고 있었는지 몰라.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고있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있었기에 모른척 하기로 말이야.
휴는 연말카드를 보내기 위해 주소록을 정리하고 있었어. 그러다 문득 다니엘이 떠올랐지. 연락을 안한지 벌써 반년이 지난걸 깨닫고 조금 놀라. 이젠 그때일은 추억으로 생각할 정도로 아득해진것 같았지. 그일은 겨우 일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휴는 다니엘에게 편지를 쓰기로해. 편지와 같이 보낼 사진도 아들과 함께 고르고 말이야. 생각만으로 휴는 기분이 좋아지는듯 했지.
"뭐?" 하비에르는 보기드물게 놀란눈을하고 휴를 쳐다봤어. "연락하려고 보니까 전화번호가 바뀌었더라고." 휴는 커피를 들이키며 말했어. 하비에르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눈썹을 치켜들었지. 그는 아무말도 하지않았어. 휴는 하비에르를 쳐다봤지. 하비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듯 핸드폰을 꺼내 들었어. 그리고는 앞에 놓여있는 냅킨위에 번호를 옮겨 적었고 아래에 주소를 하나 더 써넣었어. "직접 찾아가봐." 하비에르는 냅킨을 휴에게 건내줬어. 휴는 예고없던 발언에 놀랐지. "멍청아." 하비에르는 굳은 얼굴을 풀고 다시 웃었어. "아마 못만나고 올거다." 하비에르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어.
다니엘은 서둘러 겉옷을 챙기고 회사밖으로 나왔어. 문 앞에서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 다니엘은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어. 생각보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는지 손이 차가웠어. "오래기다렸어?" 다니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어. 그때 큰소리로 경적음이 울려. 사람들은 놀라 그쪽을 쳐다봤어. 택시 한대가 갑자기 멈춘 차때문에 경적을 울린듯 했어. 사람들은 모두들 갑작스러운 소음에 인상을 찌그리고 택시를 쳐다봐. 하지만 다니엘만은 다른쪽을 쳐다보고 있었어. "다니엘?" 그녀가 다니엘의 팔을 당겼지. 그녀는 다니엘의 홀린듯한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란듯 보였어. 다니엘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그쪽을 쳐다봐.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았어. 다니엘의 시선의 끝엔 아무도 없었어. 다행스럽게도 말이야. 하지만 방금까지 휴를 본것같은 기분이 들어.
휴는 서둘러 골목끝으로 달려갔어. 하비에르가 웃으면 말하던 말이 그제야 이해가됬어. 휴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어. 몹시 화가났어. 다정하게 그녀의 볼에 입맞추는 다니엘에 모습에 화가났고 그걸보고 화가나는 자신에게도 화가났어. 자신이 왜 도망치고 있는건지. 휴는 머리를 헝크리며 답답함에 속으로 소리를 쳤지. 그냥 웃으며 다가가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하면되는 일이었어. 그냥 반갑게 축하를 해주면 되는 일이었어. 그게 친구였으니까. 휴는 그걸 하지못했어. 지난 시간동안 그토록 부정했던 일이 사실이었어. 휴는 그를 사랑했어. 휴는 웃음을 터트렸어. 골목 한 가운데에서 웃고있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번씩 그를 뒤돌아봤지. 휴는 자신의 멍청함을 비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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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는 다니엘을 만나지 않았어. 자신의 마음을 알아버린 뒤라 마음은 편치 않았어. 친구인채라도 곁에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곁에 있다가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것같은 불안한 마음도 있었어. 휴는 다니엘이 이랬었나 하고 일년전 다니엘을 떠올렸어. 자신이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했었을때 알았다며 웃던 날, 문득 어깨가 스쳤을때 굳은표정으로 사과했던 날의 다니엘. 그리고 그 비오던날 차가웠던 체온을 말이야. 휴는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오는것 같았어. 누구든 만나야 했지. 누군가의 체온이 절실했어. 그 차가운 체온을 잊을만한 뜨거운 체온이 말이야.
다니엘은 하루종일 생각에 빠졌어. 시끄러운 경적소리 끝에 보이던 휴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았어. 그저 닮은 사람인지 아니면 잘못본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야. 다니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어. 그의 여자친구가 왜그러냐며 다니엘의 허리를 껴안았지. 다니엘은 억지로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어. "아무것도 아니야." 다니엘은 거짓말을 잘 하지 않던 사람이었어.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는 수 밖에 없었어. 그날 이후로도 다니엘은 휴의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어. 심지어 여자친구와 있을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 '만약 내옆에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라는 생각. 다니엘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로 피가 쏠리는듯한 기분이 들었어. 자신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지. 생각뿐이었지만 다니엘은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했어. 하지만 한번 피어오른 마음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어. 다니엘은 그녀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서서히 변해감을 느껴갔어.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냈지. 다니엘은 더 이상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 다니엘은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어. 그녀는 그간의 다니엘의 태도에 예감했다던 태도였어. 그녀는 헤어지는 순간마저도 다니엘에게 다정했어. 다니엘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질 못했지.
다니엘은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고있었어. 새삼 자신에게 휴가 얼마나 큰존재인지 깨닫게 됐지. 그저 허깨비 일수도 있던 그 모습에 자신은 이렇게나 휘둘려지고 있었어. 그러다가 자신의 집앞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걸 깨달아. 다니엘은 잔뜩 긴장해 혹시나 하고 발걸음을 서둘렀어.
하비에르는 늦은 밤에 휴의 아들에게서 전화를 받았어. 울고있었는지 목소리엔 물기가 가득이었어. 하비에르는 당장 휴의 집으로 달려갔지. 휴의 아들을 돌보고있던 베이비시터가 문을 열어줬어. 휴가 연락도 되질 않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해줬어. 하비에르는 미안하다며 차비를 건내주며 이제 괜찮으니 돌아가보라고 했지. 잔뜩 토라진 휴의 아들이 하비에르에게 안겨왔어. 휴가 늦은 귀가를 한지 일주일이 넘었다는 거야. 하비에르는 그 이유를 짐작 할 수 있었어. 그는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재웠어. 안심이 됐는지 아이는 금방 잠들었어. 하비에르는 휴를 기다렸어. 3시가 다 되가자 비틀거리며 잔뜩 취한 휴가 집으로 들어왔어. 휴는 거실 쇼파에 앉아있는 하비에르를 보고 좀 놀란 눈치였어. "여긴 웬일이야." 하비에르는 다짜고짜 휴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졌어. 휴는 휘청이며 바닥으로 쓰려졌지. 하비에르는 그런 휴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곤 말했어. "가지가지한다. 이젠 ㅊㄴ냐?" 휴는 하비에르의 손을 뿌리쳤어. "넌 예전부터 그랬지. 내가 부러워하는건 다 가졌으면서 그렇게!" 하비에르는 발끈한듯 소리쳤어. 하지만 말을 끝까지 끝내지 않았어. 하비에르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넘겼어. 하비에르는 아무말 하지않고 집을 나갔어. 하비에르의 주먹에도 술이 깨질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에 술이 확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그제야 자신에게서 역한 여자 향수 냄새가 난다는걸 깨달았어. 휴는 바닥에 주저 않았어.
다니엘은 집앞에 누가 있었는지 얼굴을 확인하자. 눈물이 핑 돌았어. 실망감과 미안함, 반감움이 동시에 느꼈졌어. 하비에르가 웃으며 다니엘에게 손을 흔들자 다니엘은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어. 하비에르는 놀라 다니엘에게 다가갔지. "무슨일이야? 괜찮아?" 하비에르의 목소리에 다니엘은 더욱더 눈물이 쏟아졌어. 하비에르는 그의 눈물이 멈출때까지 다니엘의 껴안고 그의 등을 두드려줬어.
휴는 천진난만하게 웃고있는 아들을 바라보았어. 아이는 장례식장의 가라앉은 분위기에 주눅들어있다가 집에 돌아오자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뛰놀기 시작했지.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렸어. 너무 어렸지. 맨중맨은 할머니와 함께있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쳐다보고 서재로 들어갔어. 책상위에는 큰 상자가 놓여있었지. 와이프의 직장에서 그녀의 책상을 정리하고 보내준 물건이 담겨있었어. 휴는 상자를 조심히 열었어. 가족사진이 있는 액자가 제일 위에 올려져있었지. 휴는 옅게 미소를 짓고 액자를 책상위에 올려두었어. 그리곤 그녀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해갔지.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던중 휴는 편지와 작은 나무상자를 발견하게돼. 휴는 상자를 흔들어봤지. 안쪽에서는 달그락거리며 무언가가 들어있었지만 잠겨있어서 열어볼순 없었어. 편지봉투속은 비어져있었어. 의아하게 생각하며 상자를 살펴보았지. 상자 바닥에는 '나의 다니에게'라는 와이프의 글씨가 적혀있었지. 아주 충동적이었어. 휴는 그녀의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고 곧 자신이 찾고자 하는 이름을 발견했지. 'Daniel Craig' 이 상자의 주인은 이 사람일거라는 생각은 확신에 가까웠어. 휴는 이 상황을 바꿔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자신을 움직이게해줄 핑계거리가 필요했을지도 몰라. 휴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어. 전화 너머로 처음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어.
다니엘은 초인종소리에 밖으로 걸어갔어. 아마 2시간 전 자신에게 전화를 했던 그 남자일거야. 그가 전해준 소식은 충격적이었어. 그녀의 부고는 너무나 갑작스러웠었으니까. 현관문을 열자 지쳐보이는듯한 인상의 남자가 작은 상자를 들고 서있었어. 다니엘을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지. 남자의 두눈을 충혈되있었어. 아마 많이 울었을거야.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다니엘은 들어오라며 현관에서 조금 비켜섰어. 휴는 거절했지만 다니엘은 그를 그렇게 보내면 안될것 같았어. 억지로 그를 집안으로 데려와 푹신한 쇼파에 앉히고 휴에게 따뜻한 차를 타다줬어. 휴는 그제야 작게 웃으며 다니엘을 쳐다봤지. 다니엘도 마주보며 웃었어. 그리고는 그가 가져온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봤지.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았어. 나이프를 상자사이에 넣고 비틀자 상자가 열렸어. 휴는 상자안을 쳐다봤어. 눈만 조각한 작은 조각이 들어있었지. "당신이네요." 휴는 조각을 보고 말했어. 다니엘은 웃으며 탁자위에 상자를 올려뒀지. "날 만들어주겠다고 열심히 만들더니. 결국 눈만 만들었나봐요." 휴는 처음듣는 이야기에 놀란듯 다니엘을 쳐다봤어. "제 아내와 친한 사이었습니까?" 다니엘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어. 그녀를 만나고 둘도없는 친구가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아내가 죽고 처음으로 휴는 환하게 웃었어. 그러다가 그리움에 눈물을 뚝뚝 흘렸지. 다니엘은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달래줬어.
그 날 처음만나고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어. 다니엘은 아이같다가도 휴보다도 더 어른스럽기도 했었었어. 휴의 아들도 그를 너무나 좋아했었지. 둘 사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 같았지. 그런데 어느날이었어 다니엘에게서 상상도 못할 말을 듣게된거야. "난 널 사랑하는 것 같아." 휴는 하던일을 멈추고 놀라 다니엘을 쳐다봤어. 휴는 더듬거리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 물론 진지하게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 그 말을 들은순간 엉망으로 뒤죽박죽되버린 머릿속으로는 제대로된 생각을 하기는 불가능했었으니까. 다니엘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냥 뭐 그렇다고." 라고 말하며 방안을 빠져나갔어.
이후로 휴는 다니엘에게 평소처럼 대할 수가 없었어. 되도록이면 전화를 피했고 어쩌다가 마주치면 최대한 이야기가 그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했어. 하지만 다니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보였어. 휴는 다니엘이 그냥 지나치듯 한 말인데 자신이 너무 신경쓰는건가 민망해졌어. 어느날이었지 우연히 다니엘과 손이 닿자 휴는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한발자국 물러섰어. 휴는 자신의 과잉반응에 민망한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갔어. 차마 다니엘을 쳐다볼 수 없었어. 이층에서 휴의 아들이 다니엘이 왔다는 말에 좋아 달려 내려왔지. 현관앞에 서있는 다니엘의 다리를 껴안으며 왜 이렇게 늦었냐며 다니엘을 쳐다봤어. 다니엘은 아이와 눈을 맞추기위해 무릎을 굽혔지. "많이 기다렸어?" 휴는 다니엘의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뒤를 돌아봤어. 휴의 아들은 작은손으로 다니엘의 볼을 쓰다듬어 주고있었어. "아저씨 왜 울어요?" 아이의 말에 다니엘은 그제야 자신이 울고있다는걸 깨달았어. 황급히 눈물을 닦아냈지만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지. 휴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짓을 한건지 알아챘지. 아무렇지도 않았던게 아니었던거야. 자신은 그 시간동안 계속 다니엘에게 상처를 줬던거야. 휴는 아들에게 잠시만 이층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고 다니엘을 손을 잡아 끌어 방안으로 들어갔어. 방까지 끌려가면서 다니엘은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었지. 휴는 울고있는 다니엘에게 손수건을 건내줬어. 다니엘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어. "그런거 아니야 휴. 난...나도...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휴는 물끄러미 다니엘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 "내가 확실히 했어야 하는건데 미안해 다니엘." 다니엘은 고개를 들고 휴를 쳐다봤어. "내게 너는 정말 소중한 친구야. 널 잃고 싶지 않아." 휴가 곤란한듯한 표정으로 말했어. 다니엘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곤 조용히 속삭였지. "알아." 다니엘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묻기로해.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다니엘에겐 이 상황은 줄타기와 같았어. 혹시나 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까 행동하나하나 조심히 하게되고 되도록이면 그와 접촉하기를 피했었어.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다니엘은 무서웠어. 다니엘이 점점 지쳐갈때쯤 우연히 휴의 친구인 하비에르를 만나게됐어. 그는 아주 독특한 억양을 가진 남자라서 다니엘은 그가 말할때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어. 물론 유머감각도 뛰어난 사람이었어. 다니엘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휴의 집안 거실에 서서 다니엘은 정원에 서있는 휴와 그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어. "드라마같네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하비에르의 목소리에 다니엘이 화들짝 놀랐어. 하비에르는 웃으며 다니엘을 쳐다봤어. 이상할정도로 집요하게말이야. 다니엘은 멋쩍은듯 손을 쥐었다 펼치며 웃었어. "휴를 좋아하죠?" 다니엘은 손을 떨며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 하비에르는 다니엘의 뺨을 쓸었어. 다니엘은 몸을 뒤로 피했지만 하비에르를 쫒아와 다니엘을 놓치지 않았어. "거짓말 말아요. 당신 눈빛만 보면 누구나 다 알것같은데." 하비에르는 손을 올려 다니엘의 속눈썹을 조심스럽게 만졌어. 다니엘이 눈을 깜박일때마다 하비에르의 손가락을 간지럽혔지. "저 바보는 왜 모를걸요. 당신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다는걸." 하비에르는 손을 내려 다니엘의 가슴위로 손을 가져갔어. "물론 마음도 예쁜것 같지만." 하비에르는 웃으면서 손을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으며 다니엘의 볼에 가볍게 입맞추고 휴가 서있는 쪽을 바라봤어. "어, 틀킨것같네." 하비에르는 하하 웃으며 자신들을 지켜보고있던 휴에게 손을 흔들어줬어. 휴는 화가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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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는 턱을 괴고 재미있다는듯 휴를 쳐다봤어. 신문을 읽던 휴는 안경을 벗고 하비에르를 쳐다봤지. 시선이 자신에게로 오자 하비에르는 더 크게 웃었어. 휴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지. "너 게이였어?" 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비에르는 웃음을 터트리며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어. "아니란건 네가 더 잘 알잖아." 휴는 인상을 구기며 발끈한듯 큰소리로 '그럼 왜?!' 라고 말했지. 하비에르는 의자에 깊게 등을 기댔어. "다니엘은 특별해." 하비에르는 미소를 지었어. "너도 잘 알잖아. 너도 그렇게 느끼면서." 휴는 그게 무슨말이냐며 자리에서 일어났지. 하비에르는 그냥 웃을뿐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어. 휴는 그의 웃음이 어딘가 승리자의 미소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어. 휴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해. 그래야될것 같았거든.
하비에르는 장난이 심한 사람이었어. 다니엘은 그게 싫지 않았어. 억지로 웃기 시작해도 결국 하비에르는 다니엘을 진짜로 웃게 만들어 줬었으니까. 원래는 휴와 셋이서 모이던 세 사람이었는데 점점 다니엘과 하비에르는 단둘이 만나는 횟수도 잦아졌었지. 만나면 특별한건 없었어 그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축구를 보거나 밥을 먹는게 전부였으니까. 아니 특별한게 하나 있다면 바로 하비에르의 과한 스킨십이었어. 목과 볼에 입맞추거나 뒤에서 허리를 껴안는 남자들끼리는 과한 스킨십 말이야. 처음엔 화들짝 놀랐었어.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를정도로 당황했었지. 하지만 하비에르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굴었어. 살갑고 다정하게.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걸 알아채고 먼저 다가와서 조심스래 다니엘의 손을 잡아주며 뺨에 입맞춰주곤 했었어. 다니엘은 그런 다정함이 낯설었어. 가끔이지만 다니엘은 진짜 눈물이 날것 같았지
오랜만에 휴의 집에서 셋이 모이게 됐어. 휴는 못본 사이 많이 친해진 둘을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어. 하지만 곧 자신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터트렸지. 이상했어.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 저녁을 다 먹고 휴와 다니엘이 설거지를 하기로해. 다니엘은 오랜만에 만난 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어. 휴는 이따금 웃음을 터트렸지. 다니엘은 정말 기분이 좋아보였어. 그날의 생기를 되찾은듯 했어. 휴와 처음 만나고 아내를 잃은 휴를 달래줬던 다니엘로 말이야. 하비에르가 다가와 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뭐가 그렇게 웃겨?" 라고 말했지. 다니엘은 웃으며 하비에르를 쳐다봤어. 휴는 그런 다니엘을 쳐다봤지.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다니엘은 딱히 자세힌 설명하진 않았지만 하비에르는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어. "나 가봐야할것 같아." 하비에르는 둘의 어깨에 올리고 있던 팔을 당겨 둘의 볼에 뽀뽀를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하며 나갔어. 하비에르의 뒤모습을 보며 다니엘이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지. 휴는 그런 다니엘을 쳐다봤어. 하비에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둘은 다시 접시를 헹구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툭, 어깨가 부딪혔지. 다니엘은 주춤 물러섰어. 방금까지 웃고 있던 얼굴이 서서히 굳어져갔지. 휴는 놀라서 다니엘을 쳐다봤어. 굳은표정으로 서있던 다니엘은 다시금 웃으며 말했어. "미안." 휴는 아무말도 하지못했어. 더이상 다니엘을 쳐다볼 수 도 없었지. 휴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한 기분이었어.
휴는 갑자기 내리는 빗물소리에 창밖을 쳐다봤어. 방금까지 맑았던 날씨가 무색하게 거센 빗방울이 어두운 밤인데도 보일정도로 거세게 내리고 있었지. 갑작스러운 소나기구나 하며 무심코 고개를 돌리려다 창밖의 낯설지않은 사람을 발견했어. 휴는 서둘러 현관으로 걸어갔지. 동시에 초인종이 울렸어.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며 현관앞에 서있던 다니엘은 생각보다 빨리 열린 문을 보고 놀라 고개를 들었어. 휴가 놀란 표정으로 다니엘을 내려다보고 있었지. "우산도 안쓰고 온거야?" 눈으로 들어오던 빗물때문에 따가웠던 다니엘은 손으로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어. "갑자기 비가 내려서 깜짝 놀랐어." 다니엘은 조금 높은 목소리로 웃었어. 그는 기분이 좋아보였어.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휴는 미소를 지어었어. "이것만 주고 가봐야돼." 다니엘은 재킷속에서 책을 꺼냈어. "젖진 않았을거야." 다니엘은 휴에게 책을 건냈어. "네가 좋아할것 같아서. 들어가서 열어봐." 휴는 엉망으로 젖어버린 다니엘에 비해 젖지않은 책을 내려봤어. 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다니엘은 물끄러미 휴를 쳐다보고 있다가 멋쩍은듯 웃으며 말했어 "이제 가볼게." 다니엘이 현관 계단을 내려가자 서둘러 휴가 다니엘의 팔을 잡아 세웠어. 다니엘은 놀라 휴를 쳐다봤어. 손 아래 젖은 옷 너머의 다니엘의 체온이 느껴졌어. 휴는 말을 까먹은 사람처럼 다니엘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알 수 없었어. 그저 이렇게 다니엘을 보내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우산빌려줄게." 다니엘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휴는 다니엘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왔어. 욕실에 다니엘을 밀어 넣고 수건을 다니엘의 어깨에 둘러줬어. 그제야 추위가 몰려온건지 다니엘이 살짝 몸을 떨었어. 휴는 다니엘을 쳐다봤어. 비에 젖어서 조금 어두워진 짧은 금발, 젖어서 아래로 가라앉은 속눈썹, 차가운 빗물에 창백해진 피부. 휴는 망설이지 않았어. 아니 망설이지 못했어. 휴는 다니엘을 벽으로 밀치고 다니엘에게 입맞췄어. 하비에르의 말이 맞았어. '다니엘은 특별해.' 그는 특별했어. 이 이상하리만치 소름끼치는 키스가 그랬어. 휴의 심장은 쿵쿵 뛰기 시작했어. 첫사랑이 시작된 소년의 심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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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는 거칠지만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대었지. 다니엘의 입술은 차가웠어. 그 사실은 휴의 심장을 더 뛰게 만들었어. 자신의 입술과는 다른 체온이 덕에 더 확실히 그의 입술이 느껴졌었거든. 입을 열고 혀를 엉키지 않아도, 가벼운 버드키스만으로도 휴의 심장은 쿵쿵 거렸어. 뛰는 심장덕에 귀가 멍멍해지고 정신이 아득해 질때쯤 팔에 차가운 손이 닿았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화들짝 놀라 다니엘을 뿌리쳤지. 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한건지 잠시동안 판단할 수 가 없었어. 다니엘은 벽에 세게 등을 박았음에도 전혀 아픔을 느껴지 못할정도로 놀랐었지. 둘은 조용히 서 있었어. 휴는 힐끔 다니엘을 쳐다봤지. 휴의 손을 떨리고 있었어. 뭔지 모르겠지만 그는 두려웠어. 다니엘이라는 존재 자체가 뭔가를 크게 들어지게 만들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어. 다니엘은 특별했어. 휴 자신에게 말이야. 휴는 떨리는 손을 힘을 주고 꽉 쥐었다 펼쳤어. 떨림이 가시는것 같았지. 휴는 손을 들어 다니엘 어깨위에 올려진 수건으로 젖은머리를 닦아주기 시작했어. 둘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 하지만 분명 1분전의 둘과는 달랐어. 휴는 평소 따라다니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또다른 답답함이 생긴 느낌이었지. 하지만 괜찮은 느낌이었어. 오히려 기분이 좋았어. 뱃속부터 간질간질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었지. 다니엘은 가만히 서서 휴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어. 자신이 꿈을 꾸고있나 싶었지. 그때 살짝 뺨위로 휴의 손이 스쳤어. 다니엘은 휴의 얼굴을 쳐다봤지. 둘은 서로를 마주봤어. 다니엘이 살짝 웃자 휴도 함께 웃어줬지. 다니엘은 팔다리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어.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휴가 다니엘의 귀를 만지며 말했어. "마른옷 가져다 줄게. 기다리고 있어."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지. 휴가 욕실에서 나가고 다니엘은 자리에 주저 앉았어.
휴는 욕실을 나와 방으로 걸어가고 있었어. 현관 앞에는 다니엘이 가져왔던 책이 바닥에 떨어져있었지. 그제야 휴는 자신이 저 책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있었다는걸 알아챘어. 아마 다니엘을 데리고 욕실에 갈때 떨어트린 모양이야. 휴는 물기에 젖은 손을 바지에 닦고 책을 주워 들었어. 책의 표지에 적힌 이름을 보고 쿵하고 심장이 가라 앉는 기분이었어. 책의 첫장을 넘기자 다니엘과 함께 찍힌 어릴적 아내의 모습이 보였어. 방금까지 뜨겁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지. 둘이 어렸을적 함께 여행을 다니며 사진 스크랩해둔 책이었어. 마지막 장을 넘길때쯤 휴는 등뒤에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다시 양손이 떨리고 있었어. 휴는 그 책을 놓칠것 같은 사람마냥 꽉 쥐고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갔어. 조심스럽게 탁자위에 책을 올려두고 표지위의 아내의 이름을 손으로 쓸었어. 툭툭 하며 탁자위로 눈물이 쏟아졌지. 그건 슬픔이 아니었어. 그의 죄책감이었어.
기다려도 휴가 오질 않자 다니엘은 욕실을 나왔어. 분명 욕실에 들어가기 전에 바닥에 떨어져있던 책이 보이지 않았어. 그제야 다니엘은 휴가 오지않는 이유를 알게 됐지. 다니엘은 휴의 방앞으로 걸어갔어. 휴는 울고있었지. 그의 눈물을 보자 무거웠던 팔다리가 더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어.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휴의 이름을 불렀어. 휴는 화들짝 놀라 다니엘을 쳐다봤어. 다니엘은 작게 웃었어. 휴는 주춤 뒤로 물러섰지. "이건..." 휴의 물음에 다니엘은 대답하고 싶었어. 하지만 목소리가 더이상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어. "이걸 가져다 주러온거였어..." 휴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탁자에 기대섰어. "넌 내 아내의 친구였어...난...." 휴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쥐었지. "나는...난...뭘한거지?" 자책하는 듯한 목소리었어. 다니엘은 이젠 억지로도 웃을 수가 없었어. 둘은 언제나 타이밍이 좋지않았어.
눈물을 흘리던 휴는 고개를 들었어. 방금까지 문앞에 서있던 다니엘이 보이지 않았어. 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돌아다녔어. 다니엘은 보이지 않았지. "다니엘!" 휴는 다니엘의 이름을 소리쳤어. 하지만 집안은 조용했지. 휴는 현관을 열고 밖을 둘러봤어. 멀리 걸어가는 다니엘의 뒷모습이 보였지. 휴는 다니엘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그를 쫒아가자고 마음먹었어. 그때였지. "대디?" 휴의 아들이 잠에서 깬듯 눈을 비비고 2층 계단 위에 서있었지. 휴는 굳은채 문앞에 서있었어. 자신이 무언가의 경계에 서있는듯한 기분이 들었지. 어느쪽으로든 그는 움직일 수 없었어. "다니가 왔었어?" 그의 아들이 계단을 내려와
휴의 다리를 껴안았지. 휴는 밖을 쳐다봤어. "...그는 갔어." 자신은 다니엘을 쫒아갈수없었어. 휴는 다리를 굽히고 아들을 끌어안았어. " 그는 가버렸어..."더이상 밖을 보지 못하고 현관을 닫았어. 다행히 비는 그쳤어. 그는 더 이상 젖지 않을거야. 휴는 그 사실로 자신의 죄책감을 위로하기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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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달이었어. 휴의 앞에 다시 다니엘이 나타나기까지. 한번이 어려웠지 두번은 쉬웠어. 아무일이 없던것 처럼. 다니엘은 그렇게 하는것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사람이었어. 하지만 휴는 아니었어. 그럴 수가 없었지. 아무렇지도 않은척, 없는 일인척 할 수록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다니엘은 그걸 알아챘었어. 하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어. 휴가 이상하다는건 말이야. 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건 다니엘 뿐이었지. 다니엘이 할 수 있는건 단 하나였어. 그가 잊을수 있도록 도와주는것. 그래서 휴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주 서서히, 천천히 그에게서 멀어졌어.
둘은 여전히 친구였어.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았지. 예전에는 서로를 잘 이해했어, 딱히 말하지 않고 눈만 마주쳐도 말이야. 그런데 이젠 아니었어. 아니 어쩌면 알고있는데도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고 있었는지 몰라.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고있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있었기에 모른척 하기로 말이야.
휴는 연말카드를 보내기 위해 주소록을 정리하고 있었어. 그러다 문득 다니엘이 떠올랐지. 연락을 안한지 벌써 반년이 지난걸 깨닫고 조금 놀라. 이젠 그때일은 추억으로 생각할 정도로 아득해진것 같았지. 그일은 겨우 일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휴는 다니엘에게 편지를 쓰기로해. 편지와 같이 보낼 사진도 아들과 함께 고르고 말이야. 생각만으로 휴는 기분이 좋아지는듯 했지.
"뭐?" 하비에르는 보기드물게 놀란눈을하고 휴를 쳐다봤어. "연락하려고 보니까 전화번호가 바뀌었더라고." 휴는 커피를 들이키며 말했어. 하비에르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눈썹을 치켜들었지. 그는 아무말도 하지않았어. 휴는 하비에르를 쳐다봤지. 하비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듯 핸드폰을 꺼내 들었어. 그리고는 앞에 놓여있는 냅킨위에 번호를 옮겨 적었고 아래에 주소를 하나 더 써넣었어. "직접 찾아가봐." 하비에르는 냅킨을 휴에게 건내줬어. 휴는 예고없던 발언에 놀랐지. "멍청아." 하비에르는 굳은 얼굴을 풀고 다시 웃었어. "아마 못만나고 올거다." 하비에르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어.
다니엘은 서둘러 겉옷을 챙기고 회사밖으로 나왔어. 문 앞에서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 다니엘은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어. 생각보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는지 손이 차가웠어. "오래기다렸어?" 다니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어. 그때 큰소리로 경적음이 울려. 사람들은 놀라 그쪽을 쳐다봤어. 택시 한대가 갑자기 멈춘 차때문에 경적을 울린듯 했어. 사람들은 모두들 갑작스러운 소음에 인상을 찌그리고 택시를 쳐다봐. 하지만 다니엘만은 다른쪽을 쳐다보고 있었어. "다니엘?" 그녀가 다니엘의 팔을 당겼지. 그녀는 다니엘의 홀린듯한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란듯 보였어. 다니엘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그쪽을 쳐다봐.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았어. 다니엘의 시선의 끝엔 아무도 없었어. 다행스럽게도 말이야. 하지만 방금까지 휴를 본것같은 기분이 들어.
휴는 서둘러 골목끝으로 달려갔어. 하비에르가 웃으면 말하던 말이 그제야 이해가됬어. 휴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어. 몹시 화가났어. 다정하게 그녀의 볼에 입맞추는 다니엘에 모습에 화가났고 그걸보고 화가나는 자신에게도 화가났어. 자신이 왜 도망치고 있는건지. 휴는 머리를 헝크리며 답답함에 속으로 소리를 쳤지. 그냥 웃으며 다가가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하면되는 일이었어. 그냥 반갑게 축하를 해주면 되는 일이었어. 그게 친구였으니까. 휴는 그걸 하지못했어. 지난 시간동안 그토록 부정했던 일이 사실이었어. 휴는 그를 사랑했어. 휴는 웃음을 터트렸어. 골목 한 가운데에서 웃고있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번씩 그를 뒤돌아봤지. 휴는 자신의 멍청함을 비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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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는 다니엘을 만나지 않았어. 자신의 마음을 알아버린 뒤라 마음은 편치 않았어. 친구인채라도 곁에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곁에 있다가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것같은 불안한 마음도 있었어. 휴는 다니엘이 이랬었나 하고 일년전 다니엘을 떠올렸어. 자신이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했었을때 알았다며 웃던 날, 문득 어깨가 스쳤을때 굳은표정으로 사과했던 날의 다니엘. 그리고 그 비오던날 차가웠던 체온을 말이야. 휴는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오는것 같았어. 누구든 만나야 했지. 누군가의 체온이 절실했어. 그 차가운 체온을 잊을만한 뜨거운 체온이 말이야.
다니엘은 하루종일 생각에 빠졌어. 시끄러운 경적소리 끝에 보이던 휴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았어. 그저 닮은 사람인지 아니면 잘못본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야. 다니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어. 그의 여자친구가 왜그러냐며 다니엘의 허리를 껴안았지. 다니엘은 억지로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어. "아무것도 아니야." 다니엘은 거짓말을 잘 하지 않던 사람이었어.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는 수 밖에 없었어. 그날 이후로도 다니엘은 휴의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어. 심지어 여자친구와 있을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 '만약 내옆에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라는 생각. 다니엘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로 피가 쏠리는듯한 기분이 들었어. 자신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지. 생각뿐이었지만 다니엘은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했어. 하지만 한번 피어오른 마음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어. 다니엘은 그녀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서서히 변해감을 느껴갔어.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냈지. 다니엘은 더 이상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 다니엘은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어. 그녀는 그간의 다니엘의 태도에 예감했다던 태도였어. 그녀는 헤어지는 순간마저도 다니엘에게 다정했어. 다니엘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질 못했지.
다니엘은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고있었어. 새삼 자신에게 휴가 얼마나 큰존재인지 깨닫게 됐지. 그저 허깨비 일수도 있던 그 모습에 자신은 이렇게나 휘둘려지고 있었어. 그러다가 자신의 집앞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걸 깨달아. 다니엘은 잔뜩 긴장해 혹시나 하고 발걸음을 서둘렀어.
하비에르는 늦은 밤에 휴의 아들에게서 전화를 받았어. 울고있었는지 목소리엔 물기가 가득이었어. 하비에르는 당장 휴의 집으로 달려갔지. 휴의 아들을 돌보고있던 베이비시터가 문을 열어줬어. 휴가 연락도 되질 않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해줬어. 하비에르는 미안하다며 차비를 건내주며 이제 괜찮으니 돌아가보라고 했지. 잔뜩 토라진 휴의 아들이 하비에르에게 안겨왔어. 휴가 늦은 귀가를 한지 일주일이 넘었다는 거야. 하비에르는 그 이유를 짐작 할 수 있었어. 그는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재웠어. 안심이 됐는지 아이는 금방 잠들었어. 하비에르는 휴를 기다렸어. 3시가 다 되가자 비틀거리며 잔뜩 취한 휴가 집으로 들어왔어. 휴는 거실 쇼파에 앉아있는 하비에르를 보고 좀 놀란 눈치였어. "여긴 웬일이야." 하비에르는 다짜고짜 휴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졌어. 휴는 휘청이며 바닥으로 쓰려졌지. 하비에르는 그런 휴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곤 말했어. "가지가지한다. 이젠 ㅊㄴ냐?" 휴는 하비에르의 손을 뿌리쳤어. "넌 예전부터 그랬지. 내가 부러워하는건 다 가졌으면서 그렇게!" 하비에르는 발끈한듯 소리쳤어. 하지만 말을 끝까지 끝내지 않았어. 하비에르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넘겼어. 하비에르는 아무말 하지않고 집을 나갔어. 하비에르의 주먹에도 술이 깨질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에 술이 확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그제야 자신에게서 역한 여자 향수 냄새가 난다는걸 깨달았어. 휴는 바닥에 주저 않았어.
다니엘은 집앞에 누가 있었는지 얼굴을 확인하자. 눈물이 핑 돌았어. 실망감과 미안함, 반감움이 동시에 느꼈졌어. 하비에르가 웃으며 다니엘에게 손을 흔들자 다니엘은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어. 하비에르는 놀라 다니엘에게 다가갔지. "무슨일이야? 괜찮아?" 하비에르의 목소리에 다니엘은 더욱더 눈물이 쏟아졌어. 하비에르는 그의 눈물이 멈출때까지 다니엘의 껴안고 그의 등을 두드려줬어.
어휴 선생님 사랑합니다
답글삭제선생님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너무너무너무죠아여
답글삭제아ㅜㅜ선생님....최고에요..더써주실거죠..?
답글삭제왜 어나더가 없는걸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삭제하 선생님 ㅜㅜ 플리즈 어나더..! 어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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